수필가이자 국어학자이며, 동시에 무속연구가이기도 한 서정범은 1926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황해도로 이주해 성장했으며 한국전쟁 중 해주에서 홀로 월남했다. 시인 김광섭과 소설가 황순원이 재직하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1957)와 동 대학원(1959)을 졸업한 후, 평생을 모교에서 후진 양성에 이바지했다.
서정범은 수필가로서의 명성만큼 저명한 국어학자로 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특수 계층인 ‘백정’의 언어를 다룬 <한국 특수어 연구>(1959)에서 시작된 그의 학문 분야 연구는 <15세기 국어의 표기법 연구>(1964), <현실음의 국어사적 연구>(1975), <음운의 국어사적 연구>(1982) 등으로 이어져 국내외 언어학계에 일찍부터 신선한 충격을 가했다. 특히 그의 후기 저작들인 『우리말의 뿌리』(1989), 『일본어의 원류』(1989), 『한국에서 건너간 일본의 신과 언어』(1994), 『국어어원사전』(2000)은 우리말의 원형과 기원은 물론 일본과 몽골, 터키 등이 속한 알타이 언어권과의 상관성을 추적하는 데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무속연구가의 직함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었다. 주목받는 언어학자로서 서정범의 공적은 주로 살아 있는 모국어의 현장에서 견인된다. 그는 고대 원시언어의 계통 관계와 현재적 ‘흔적들’을 시공간의 차원을 넘나들며 입체적으로 추적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샤먼과 그들의 언어 체계에 대한 탐구 작업이다. 그가 꽤 오랜 기간 동안 전국의 무당들을 찾아다녔던 이유도, 적지 않은 그의 수필 작품들이 무속의 세계 혹은 신화적 세계관과 일정한 상관성을 지니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에서 연유한다.
서정범의 수필 문학은 1974년 첫 작품집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를 발간한 이래, 『겨울 무지개』(1977), 『무녀의 사랑 이야기』(1979)로 이어진다. 이후 1980년대 『그 생명의 고향』(1981), 『사랑과 죽음의 마술사』(1982), 『영계의 사랑과 그 빛』(1985), 『품봐, 품봐』(1985), 『학원별곡』(1985), 『어원별곡』(1986) 등을 거쳐, 1990년대에는 『무녀별곡』(전 7권)과 『서로 사랑하고 정을 나누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1999)로 이어졌다. 특히 『학원별곡』, 『대학별곡』, 『익살별곡』 등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이른바 ‘별곡 시리즈’는 동시대의 은어나 속어, 또 유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들로, 단순한 ‘우스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암울했던 우리 삶의 이면을 블랙 유머라는 독특한 방식을 전용해 표현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를 대표하는 저서로는 『한국무속인열전』(전 6권)을 꼽을 수 있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어원학회장, 한국수필가협회 부회장, 경희문인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제18회 한국문학상(1981), 제9회 펜문학상(1993), 제10회 수필문학상(2000), 제8회 동숭학술상(2004) 등을 수상했다.
2009년 7월 14일, 83세의 나이에 영면했다.
이성천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가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 말의 부도≫(2007), ≪한국 현대 소설의 숨결≫(2009), ≪위반의 시대와 글쓰기≫(2012), ≪현대시의 존재론적 해명≫(2015) 등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계간 ≪시와시학≫, ≪시에≫의 부주간 및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0회 젊은평론가상, ≪시와시학≫ 평론상, 경희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