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Nixon 대통령은 Watergate 도청사건72년 6월을 지시하거나 기획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백악관 참모들의 과잉충성이 초래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Nixon이 탄핵 직전까지 몰린 것은 이 사건을 은폐cover-up하기 위해 했던 그의 각종 거짓말과 사법방해obstruction of justice 행위를 미국민들이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Nixon은 CIA를 통해 FBI의 수사를 지속적으로 방해하려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FBI 부국장 Mark Felt는 Washington Post지의 두 기자에게 이런 Nixon의 불법&부당 행위를 지속적으로 제보합니다. 당시 두 기자는 Mark Felt를 Deep Throat라고 부르며 취재원을 보호했습니다. 이 신문의 계속된 보도로 Nixon은 궁지에 몰리고 결국 73년 가을에 특검수사를 받는 상황에 이릅니다. 하지만 73년 10월 어느 토요일, Nixon은 특별검사 해임권을 가진 법무부 장관에게 특검 해임을 지시합니다. 장관은 그 지시를 거부하고 즉시 해임됩니다. 차관에게 다시 특검 해임을 지시하지만 차관도 거부하여 또다시 해임되고, 법무부 서열 3위가 장차관을 대신하여 특검을 해임합니다. 토요일 밤에 일어난 대량(?) 해고라고 해서 이 사건을 Saturday Night Massacremassacre; 대학살라고 부릅니다. 치졸한 Nixon에 대항한 장/차관의 이 항명은 미국의 정의가 살아 있는 방증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대학살’로 여론이 Nixon 곁을 떠나자 그는 다음 달 어느 기자회견에서 이후 유명해진 말 “I’m not a crookcrook; 범법자, 사기꾼”을 외치며 마지막 항변을 했지만, 이미 국민은 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