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감정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것들은 어떤 것에도 포함되지 않지만 동시에 우리들 모두에게 포함됩니다. 어쩌면 약간은 인식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시를 통해 그 점을 처음 알게 됩니다. 그 시인은 이렇게 연약하고 귀중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겸비한 선박입니다. 그는 햇빛이 비추는 유리창의 유리를 닦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멈춰서 이러한 꿈같은 존재를 깨닫기 위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순간과 그 모든 것이 여러분의 주목을 끌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여러분을 위한 시를 쓰게 된다면, 그 시가 여러분의 머리를 가득 채우거나 가슴을 꽉 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의 제자는 그 경험을 ‘작은 깨달음!’으로 매우 잘 표현하였습니다.
Sally가 저술한 2번째 시집에서, 나는 그녀의 영혼, 생각과 감정의 세계로 함께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젊은 여성이 세상에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녀가 전하려고 노력하는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단어와 소리, 리듬을 선택하여 각각의 시를 썼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그녀의 생각과 의도를 명확히 하였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이따금 나는 우리가 돌무더기에서 ‘작은 깨달음’, 즉 귀중한 보석을 발굴할 때마다 숨을 골랐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신성한 것이었습니다.
Sally의 시를 통해, 우리는 이렇게 소박한 그릇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는 용기 있는 젊은 여성의 솔직함과 자신감을 경험하고 연약한 감정과 기쁨, 실망, 두려움, 승리뿐만 아니라 그녀의 깊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으로서, 이러한 외침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Sally가 시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열정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명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녀가 어렸을 때 한국에 있는 집 근처의 언덕에서 아버지와 함께 귀중한 둘레길 하이킹을 하였는지? 그녀의 어머니가 식사 시간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훌륭하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는지? 그녀의 삶의 대부분을 자신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필리핀에서 공부하고, 문화에 적응하고, 잘 모르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는 과정에서 삶의 희생이 있었는지? 그녀가 이제까지 쌓아 온 우정, 졸업한 친구들, 사랑했지만 잃어버린 애완동물에 대한 추억 등과 내가 초등학교 때 매년 생일에 써 주었던 시들을 아직도 특별 상자에 가둬 두고 있는지? 혹은 Sally가 시를 선택했는지, 아니면 시가 그녀를 선택했는지?
나는 아직도 그 대답을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녀가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유한 이 귀중한 우정의 축복을 내가 받았고, 그녀의 시를 통해 그녀의 여행의 일부가 될 수 있는 특권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이런 이유로, 독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깊은 곳에서 생명의 원천을 살펴보라는 것이고, 거기서 자신이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걸 해석하려 하지 말고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도 여러분은 예술가라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독자 여러분의 인생은 그 시점에서 제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생산적이며, 원대할 것입니다.” (…)
---「Rainer Maria Rilke, ‘젊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