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수많은 양상의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하면서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 일일이 종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원자력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핵에 노출될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경주 지역 주민들은 반복되는 지진으로 한동안 불안에 시달리기도 했다. 남북 간에 전쟁이 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의 위협에서 비교적 안전한 미국 사람들 중에도 핵 전쟁의 불안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지하 벙커식의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근처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전자파 때문에 불안해 하는 이들도 있다. 이와 같은 예를 든다면 이 책 전체의 지면을 할애해도 모자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의 정의
에덴동산은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죄가 에덴동산에 들어오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에덴동산과 종말론적인 천국 사이에서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살아 숨 쉬는 동안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불안은 ‘아닐 不’자에 ‘편안할 安’자로 이루어진 한자어다. 여기서 ‘安’은 집에 여자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엄마가 집 안에서 안주인 역할을 잘하는 것이 평화롭고 편안한 상태라고 본 것이다. 영어로는 ‘anxiety’라는 단어가 대표적으로 사용된다. 형용사형 ‘anxious’는 ‘불안해서’라는 의미도 있지만 간절히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불안(anxiety)은 두려움(fear)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구별되어 사용된다. 불안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편안하지 않은 것(uneasy, uncomfortable)을 의미하는 반면에 두려움은 편안하지 않은 이유와 대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두려움은 불안의 이유와 대상이 분명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나는 혹시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두렵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다. 두려움이라는 표현 대신 무서움이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된다. 공포증(phobia)은 두려움이 특정한 대상과 연결되며 그 대상을 회피함으로써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증상을 종합해서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면, 고소 공포증, 뱀 공포증, 광장 공포증, 무대 공포증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이사야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사 40:6)이라고 인간을 이해했다. 풀이나 꽃과 같이 연약하면서도 잠정적인 존재가 인간이다. 사도 바울도 인간을 취약한 ‘질그릇’에 비유했다(고후 4:7 참조). 특히 위협 앞에서 약하며 그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인간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며 사는 존재다. --- pp. 17-54
원인을 안다고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인을 아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을 이해하고 대처하며 극복하는 데 유익하다. 성경은 불안과 두려움이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고 계시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는 명령을 주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경고하신 것이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분명하고도 엄격한 금기 및 경고는 분명히 아담과 하와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이 사실은 불안이나 두려움 자체가 죄가 아님을 알려 준다. 원래 불안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경보장치 기능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와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뱀의 유혹과 속임수에 금지된 경계선을 넘고 말았다. 죄가 들어온 뒤에 불안과 두려움은 순기능으로 작용하기보다 주로 역기능적으로 작용하는 부정적인 경험이 되었다. 부정적인 의미로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요인들이나 이유들을 규명하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을 대처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죄(불순종)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불안을 느끼는 센서(sensor)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센서가 작동되었을 때 불안의 수준보다 호기심과 쾌감의 수준이 더 커서 불안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초자아의 역할을 하는 비판자(censor)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두려움이나 혐오감이 쾌감보다 크면 죄를 짓지 않는다. 그러나 하와는 그렇지 못했다. 더구나 하와가 아담도 열매를 먹게 한 것을 보았을 때 그 열매를 먹고 나서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오지도 않았고 열매의 맛이 쓰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열매를 먹은 후에 공포감을 느꼈다면 남편에게 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죄는 반드시 일시적인 쾌감의 증가와 고통의 경감을 약속한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함께 죄를 범하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는 곧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순기능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그들은 죄로 오염된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창 3:7)을 알게 되었고 수치심으로 인한 불안과 긴장감을 느꼈다. ‘아는 것’은 양면성을 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는 말씀의 ‘앎’ 또는 ‘지식’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진리 되신 예수님은 당신을 죄와 심판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 예수님을 믿고 알면 자유하다. 더 나아가 일반적인 의미의 ‘앎’과 ‘지식’은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치는 데 유익하다. 과거에는 개기일식을 신의 노함으로 생각하거나 흉조로 해석해서 매우 두려워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일식이 ‘지구가 달과 해와의 관계에서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예견하는 시간과 위치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일식이 일어나도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는 대신 그 현상을 관찰하며 즐긴다. 반대로 모를 때에는 자유했는데 알고 나면 불편하고 힘든 경우도 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세상적으로 자유롭게 살았는데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 큰 고민과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이는 필요한 고민과 갈등이다. 필요한 불편함이다. --- pp. 57-83
신앙인의 삶에서 불안과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불안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찾아야 하는데 보이는 것과 현상적인 것에 눈과 귀가 쏠릴 위험성이 커진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 또는 눈에 보이는 힘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려는 인본적인 노력을 강구하기 쉽다. 따라서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잘 이해하고 대처하지 못하면 믿음으로 행하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
인본적인 방법에 의존함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수치심을 느껴 잠정적으로 만든 것이 무화과 나뭇잎을 엮은 치마였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은 하루도 채 버티기 힘들다. 반복적으로 새로 만들어 입어야 한다. 이 옷은 수치심에서 생기는 불안에 대처하는 방어 기제로서 ‘방어 기제의 잠정적인 유용성’을 상징한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옷이라도 입고 있으면 수치심이 가려지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일시적으로 불안과 긴장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화과 나뭇잎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수치심이나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장기적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죄책감도 방어 기제를 사용해 일시적으로 잠재울 수 있으며 어느 기간까지는 억압해 둠으로써 죄책감으로 인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방어 기제에 의존하는 식의 대처 방안은 오래가지 못한다. 방어 기제가 기능을 다하면 증상이 드러나게 된다. 이 증상은 보다 근본적인 치료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하는 ‘상징’(symbols)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지어 입히신 가죽옷은 장기적이며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상징한다. 가죽옷은 말라 버리거나 부서질 염려가 없는 옷이다. 하나님은 수치심과 죄책감에 대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셨다. 이것이 은혜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일시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실존적인 불안은 어떤 세상적인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죽음의 공포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의 복을 받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친히 세상 죄를 지고 산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새 자기’의 옷을 날마다 입는 자는 근본적인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인본적인 ‘옛 자기’의 옷을 벗어야 한다. 통제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 pp. 107-136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셨고 하고 계시는지를 알고 믿는 것은 당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원이자 능력이다. 이 신적 인 지식과 믿음을 당신의 삶에 적용할 때 구체적인 지혜와 방법이 된다. 이 장에서 나는 당신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지혜와 방법에 대해 기억을 되살리며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대처 방안들을 제시 하고자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기도는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기도하면 두려움이 잦아든다. 기도할 때 당신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을 지키시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특히 통성기도는 불안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말과 소리를 통해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며 치료적이다. “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 “무서워요”라고 당신의 상태를 하나님께 소리 내어 아뢰는 것은 기도하는 당신에게 필요하며 유익하다. 하나님이 듣지 못하실까봐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 부르짖으면 기도하는 자의 마음과 생각 에 변화가 일어난다. 소리 내어 기도하다 보면 눈물이 터지고 때로는 감정의 정화가 일어나는 부차적인 유익이 있다. 부르짖을 때 위협적인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해의 장이 열린다. 불안하고 두려울 때, 슬플 때, 또는 화가 날 때 당신만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은밀한 중에 계시며 은밀한 중에 들으시는 하나님이 분명히 응답하신다(마 6:6 참조). 다윗도 통성기도를 했다. 그는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시 55:16-17). 그는 또 “백성들아 시시로(at all times)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라고 노래했다. 불안한 마음을 하나님께 토설(吐說)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불안과 두려움을 무시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불안과 두려움의 이유와 결과, 그리고 대처방식을 성경적인 관점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마치 상담실에 앉아서 상담을 하듯이 나 자신과 타인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불안을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손철우 (백석대학교 상담대학원 교수)
이 책은 단순히 책상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랜 기간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교인들을 상담하며 얻은 숙성된 결과물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경쟁사회에서 불안 가운데 살며 여러 심리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을 목도한 저자는 심리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근원적인 죄에서 문제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존재를 세우고 바라보게 하며 참된 안전과 평화가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인식하도록 이끈다. 이 책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조곤조곤하게 말하듯 쓰여 가독성이 높다. 중견 목회상담자의 연륜과 통찰이 깃든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 교수)
저자는 이 책에서 불안과 두려움의 원인과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그에 따르는 우리의 방어 기제와 대처법 등을 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말씀을 예로 들어 체계적으로 보여 준다. 이 책은 공황장애, 우울증 등으로 세상을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를 줄 것이다. 직장생활, 대인관계에 지친 청년들을 비롯해서 조직을 이끌어가야 하는 리더,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