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해파리처럼 살다가 해파리처럼 갔다. 파도에 밀려 물위를 떠돌땐 형체도 있고 목숨도 있다가 어느 우악스러운 손길이 있어 그것을 모래쪽에 던져놓으면 나중엔 제 몸이 놓였던 흔적조차 지워버리고 그대로 하늘로 증발해버리고 마는 그 무소유의 강장동물처럼, 어린날 운명처럼 다가온 어느 우악한 발길 아래 또다른 한 삶의 해파리로 뜨거운 모래 위에 내던져저서...
--- p.99
이 소설은 꼭 20년만에 완성한 셈이다. 처음 그분에 대한 글을 썼던 것은 꼭 20년 전 내 나이 스물 두 살적 아직 그분이 살아계실 때였다. 이제 내 이름을 가진 소설을 써 보자고 마음먹었던 첫 습작품으로 나는 그 분 이야기를 썼다.
--- p. 작가의 말 중에서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은호도 마루에 버텨 서서 지지 않고 말을 받았다.
'병신이라니 어느 집 병신을 두고 하는 소린데요?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병신을 두고 하는 얘기예요? 아니면 심뽀를 제대로 못 쓰는 병신을 두고 하는 얘기예요? '
'니가 시방 그게 누군지 몰라서 묻는 거나, 아니면 우리를 막 보자고 하는 거냐? '
'내가 아주머니 말대로 아직 나이가 어려빠져서 뭘 몰라서 묻는 거쟎아요, 그 병신이 어떤 병신인지'
'어떤 병신은 뭐 어떤 병신이야? 해파린지 쇠파린지 하는 병신 얘기지'
'나는 어려빠져서 그렇다고 치고, 아주머니는 나이를 잡숴서 그런지 말을 참 잘하우. 그러면 그 아저씨가 왜 해파리가 되고 쇠파리가 되었는데요?'
--- p.73
그 '물건' 이 떠난 다음 아저씨의 말년은 참으로 적막하고 쓸쓸하고 구차하였다. 아저씨에겐 아들이 없긴 하지만 열 효자가 악처 하나만 못하다는 말이 어김없이 거기에도 적응이 되고 있는 듯 했다. 게다가 아저씨도 눈에 띄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일생에서 가장 희망찼던 날들은 숙모와 함께 지내던 시절이었다. 장날마다 동네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새벽밥을 짓는 아내가 있었고, 비록 바르게 서지 못하는 몸이나마 근면하고 성실하게 움직일 근력과 희망이 있던 시절이었다.
--- 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