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의 시선이 소궁주를 부축하고 서 있는 고연빈을 향했다. 그러자 곽철진의 눈빛이 급격히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더러운 놈. 그렇게는 안 된다. 차라리 날 죽여라!” “당연히 네놈도 죽인다. 하지만…….” 주연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매서운 눈빛이 노리는 상대는 다름 아닌 고연빈이었다. “그전에 네놈의 손녀가 먼저다!” 사악한 검은 기운이 이글거리며 주연의 몸을 타고 움직였다. 바로 정소교를 크게 다치게 한 흑살조를 다시 펼치려 한 것이다. 주연의 시야에 고연빈과 정소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단숨에 모두 죽여 주마.” 사악한 검은 발톱이 두 여인의 목숨을 노린 바로 그 순간, 엄청난 강기가 주연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과과과광!」 굉음과 함께 날아오는 맹렬한 강기는 도저히 감당할 만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간신히 피해 낸 주연이 성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느 놈의 짓이냐?” 살기 가득한 주연의 질문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또 한 번 무시무시한 강기가 그를 노렸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주연은 바닥을 굴러 겨우 피해 낼 수 있었으나,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부끄러워하는 뇌려타곤(惱驢打昆)의 수법이었다.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주연이 서둘러 일어서며 외쳤다. “어느 시건방진 놈이냐? 정체를 밝혀라!” “나요.”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 하지만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란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대단하군. 설마 뇌려타곤으로 피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주연의 시뻘건 얼굴이 일그러지며 더더욱 괴상하게 변해 갔다. “이익! 주, 죽일…….” 수풀을 헤치며 다가오던 인물이 기어코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비궁의 제자들과 고연빈은 생각지 못했던 구원자의 방문에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주연의 마수로부터 고연빈과 소궁주를 구해 낸 인물은 그녀들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다소 헝클어진 머리에 헤진 무복을 걸친 탄탄한 체격의 소유자. 그는 바로 소식을 전해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추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