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순이는 뭐 그리 썩 이쁜 계집애는 못 된다. 그렇다고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되어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 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헌칠히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뭉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젤 맛 좋고 이쁘니까 말이다. --- p.16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래그래. 인젠 안 그럴 테야!"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깊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둥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 p.39
한 해 동안 애를 졸이며 홑자식 모양으로 가꾸던 그 벼를 거둬들임은 기쁨에 틀림없었다. …(중략)…장리쌀을 제하고 색조를 제하고 보니 남은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있을 따름. 그것은 슬프다 하니 보다 끝없이 부끄러웠다. 같이 털어 주던 동무들이 뻔히 보고 섰는데 빈 지게로 덜렁거리며 집으로 돌어오는 건 진정 열없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참다 참다 응오는 눈에 눈물을 흘렀던 것이다.
김유정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폐결핵에 걸려 불우한 삶을 살았지요. 그런데 그의 소설 「봄봄」과 「동백꽃」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늘 웃기는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슬픈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웃음을 통해 이겨 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김유정 소설의 문학적 가치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응어리진 슬픔과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데에 있습니다. 황선열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