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Nature)을 만들어봐.”
클라포시우스가 말했다. 기계가 윙 소리를 내자 트루를의 앞마당은 순식간에 자연사학자(naturalist)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논쟁하고, 각자 두꺼운 책을 출판해대고, 자기 것이 아닌 다른 책들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먼 곳에는 불타는 장작더미가 보였다. 그 위에는 조물주(Nature)에 순교하려는 이들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그러자 천둥이 치고, 이상한 버섯 모양 구름 기둥이 피어올랐다. 모두가 동시에 떠들어댔고 아무도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계약서, 항소장, 소환장과 다른 문서들이 날아다녔고, 좀 떨어진 곳에서는 노인들 몇이 앉아 종이쪽지에 무엇인가를 미친 듯이 갈겨대고 있었다.
“괜찮잖아, 응? 완전히 자연스럽네. 인정하라고!”
--- pp.33~34
그는 뼛속까지 군국주의자인 데다가 엄청난 구두쇠였다. 왕실 자금을 아끼기 위해 그는 사형을 제외한 모든 처벌을 없애버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불필요한 관청을 없애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사형 집행소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은 시민은 모두 스스로 목을 베거나, 아니면 드물게 왕이 관용을 베푸는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베어주어야 했다. 아트로시투스가 비용이 거의 안 든다는 이유로 후원하는 예술은 합창 연습, 체스와 군사 체조 등이었다. 그가 특히 높이 평가하는 전쟁의 기술은 대단히 발전했다. 한편 평화로운 기간에만 제대로 전쟁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왕은 적당한 정도로나마 평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한 가장 중요한 개혁은 반역의 국유화였다. 이웃 왕국이 끊임없이 스파이를 보내오고 있었기에, 왕은 왕립간첩청을 만들었다. 간첩청 소속의 간첩은 부하인 배신자 직원들을 통해 얼마간의 돈을 받고 국가 기밀을 적의 간첩들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유효기간이 지난 비밀만 살 수 있었다.
--- pp.43~44
그는 실천에서는 독재자였지만 견해는 자유주의적이었다. 대관식 기념일마다 그는 개혁을 시행했다. 한번은 기요틴을 꽃으로 장식하라고 명령했고, 다음엔 끼긱 소리가 나지 않도록 기름칠을 시켰다. 사형집행인의 도끼에 도금을 하고 모두 다시 갈도록 했다. 인도주의적 이유에서였다.
또 이 고결한 군주는 어떤 이론을 실천했는데, 그것은 보편적 행복의 이론이었다. 즐겁다고 웃는 것은 아니지만 웃으면 즐거워진다는 사실은 확실히 잘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모두가 현 상태가 최상이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즉각 더 나아질 것이다. 따라서 페로시투스의 신민들은 스스로를 위하여 모든 것이 얼마나 멋진지를 외치며 돌아다녀야 했다. 막연한 구닥다리 인사인‘안녕’은 왕의 명령으로 좀 더 어조가 강한‘할렐루야!’로 바뀌었다. 그러나 14세 이하의 아이들은‘와우! 와아! , 노인들은‘멋져!’라고 말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 p.45
신병 각각의 배에 플러그를 달고 등에 소켓을 단다. “열간격 좁혀!”하고 명령하면 플러그와 소켓이 연결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 군중이 있었던 곳에 완벽한 대부대가 서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온갖 종류의 비군사적 헛생각을 일삼아온 분리된 정신들이 하나의 연대의식으로 녹아들고, 군대는 수백만의 부분으로 구성된 하나의 전투 기계가 되었으니, 자동적으로 훈련이 될 뿐만 아니라 지혜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 지혜는 군대에 속한 로봇 병사의 수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지도자가 자기 자신뿐인 군대, 이것이 저의 아이디어입니다!”
--- p.50
트루를의 전자 시인과 겨루어보고자 하는 치명적인 충동에 저항할 수 있는 시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두루 먼 곳에서 원고가 가득 찬 트렁크와 수트케이스를 끌고 왔다. 기계는 도전자 한 사람씩 낭송하게 한 다음 그 시에서 즉각 알고리듬을 포착해내 완전히 같은 스타일의 답시를 지었는데, 다만 답시가 원래 시보다 220배에서 347배쯤 더 나았다.
그러나 최악의 일은, 삼류 시인들은 한 사람도 상처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삼류였기 때문에 좋은 시와 나쁜 시를 구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네들이 처절하게 졌다는 것을 눈치 채지도 못했다.
--- p.68
트루를은 자기 발명품 때문에 상당히 곤란에 빠진 터였다. 자기 시의 이미지만큼이나 힘센 몸집을 한 시인 하나는 트루를을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 그리고 창조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태는 제멋대로 흘러갔다. 자살이나 장례식 없이 지나가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병원 주위에 피켓을 든 줄이 늘어섰다.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다. 점점 더 많은 시인들이 트루를의 전자 시인을 이기기 위해 수트 케이스에 원고 대신 라이플을 넣어왔다.
--- pp.69~70
그쯤 되자 트루를은 숨어버렸기 때문에 사령부에서는 기술자 한 팀을 소행성대에 내려 보내 기계의 출력 유닛에 재갈을 물리려고 했다. 그러나 기계가 발라드 몇 편으로 그들을 제압해버리는 바람에 그 임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번엔 귀머거리 기술자들을 보냈지만, 기계는 팬터마임을 선보였다. 그다음에는 전자 시인에게 무기형 탐험 여행을 명하거나, 폭탄을 떨어뜨려 굴복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 p.71
그곳에는 여러 개의 도시, 강, 산, 숲과 시내, 구름이 낀 하늘, 의기충천한 군대, 요새, 성과 여성용 화장실이 있었다. 그런 다음 그는 은빛 팡파르를 울리고 21발의 예포를 쏘아 대기를 종횡으로 휘젓고, 꼭 필요한 한 움큼의 배신자, 한 줌의 영웅, 한 자밤의 예언자와 선지자, 구세주와 위대한 시인 각각 한 명씩을 던져 넣었다. 그는 왕국의 여자들에게는 아름다움을, 남자들에게는 뚱한 침묵과 술 취했을 때의 험악한 기세를, 공무원에게는 오만과 비굴을, 천문학자들에게는 별에 대한 열광을, 아이들에게는 소음을 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주 정밀하게 설치하고 연결해서 상자에 맞춰 넣었다. 아주 큰 상자가 아니라 그냥 쉽게 들고 나를 수 있는 크기의 상자였다.
--- p.184
“그 왕국은 전부 해봤자 3×2×2.5피트 상자에 딱 들어맞아……. 그건 그냥 모형이라고…….”
“무엇의 모형?”
“무엇의 모형이냐니, 무슨 말이야? 당연히 문명의 모형이지. 수억 분의 1 크기라는 점만 제외하고.”
“그러면 자네는 우리보다 수억 배 더 큰 문명이 없다는 걸 어떻게 알지? 만약 그런 문명이 있다면 그때는 우리 문명이 모형이 되는 건가? 어쨌건 간에 규모가 뭐가 중요해? 그 상자 왕국의 거주자들에게는 수도부터 모퉁이까지 가는 데 몇 달이 걸리지 않겠어? 그들은 괴로움을 안 겪어? 노동의 짐을 모르나? 죽지도 않나?
--- p.187
“오, 후진적인 외계인이여, 두려워 말라. 내게는 많은 노예를 소유할 때 얻을 수 있는 끝없는 이익에 대해 네게 설명해줄 전문가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노예들에게 여러 가지 다른 색의 로브를 입혀 커다란 광장에 세워서 살아 있는 모자이크를 만들 수도 있고,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만들 수도 있지. 무더기로 묶어서 언덕 아래로 굴려도 되고, 오천은 머리로, 삼천은 손잡이로 써서 거대한 망치를 만들어 바위를 깨거나 숲을 개간할 수도 있다. 그들을 땋아 밧줄로 만든 다음 벽걸이 장식품을 만들 수도 있다. 그 밧줄을 심연 위로 늘어뜨리면 맨 아래 있는 자들은 몸을 익살스럽게 돌리고 발로 차고 깩깩거려서, 마음이 기쁘고 눈이 즐거운 광경을 만들리라. 혹은 젊은 여자 노예 십만 명을 모두 한 다리로 세우고 오른손으로는 세모를, 왼손으론 동그라미를 그리게 해도 좋지. 정말이지 장관이거든, 한번 보면 반해버릴 게다. 내 경험으로 하는 말이야!”
--- pp.20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