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과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피라미드, 이란의 페르세폴리스와 페루의 고산도시 마추픽추에서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5000년 인류역사에 대한 경외와 겸손이었다. 절대자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지고한 영혼을 가진 인류만이 품어낼 수 있는 향기였다.
--- 지은이 서문 중에서
이집트에서 사하라 사막의 황홀한 일몰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낙타를 잠깐 세워 두고 멀리 지평선에서 몰려오는 석양의 파도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사하라의 일몰은 태양과 자연과 인간이 벌이는 태고의 장엄한 의식이었다. 유난히 커 보이는 태양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모래 속으로 서서히 무너져 내릴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모스크의 아잔 소리. 이 소리를 신호로 인간은 하루 일을 접고, 식기 시작한 모래에 엎드려 신을 향해 한없는 겸손을 표한다.
--- p.
여행을 계속하면서 나는 점차 말수가 줄어 갔다. 내가 보고 느꼈던 그 엄청난 문화의 깊이와 중첩된 삶의 메시지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머리말 중에서
양고기는 빵과 함께 터키인의 주식이다. 6년 간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뒤 한동안 온 식구가 일곱 살 난 딸애의 음식 투정에 시달렸다. 치즈와 검은 올리브와 요구르트는 비싸기는 해도 그런 대로 준비할 수 있었지만, 양고기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았다. 터키에 살때 쇠고기 요리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른 2인분의 양고기 구이를 먹어 대던 아이다. 양고기는 처음에는 특유의 노린내가 거슬리기도 하지만, 한 서너 번 먹어 보면 누구나 쉽게 그 맛에 익숙하게 된다. 한동안 부드럽고 담백한 그 맛을 못 잊어 양고기 요리를 잘 한다고 소문난 서울 시내 음식점을 두루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도무지 제 막을 내는 데가 없었다. 우선 먹는 분위기가 달랐고, 육질, 고기 저미는 방법, 향료와 양념의 종류, 불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 p.21
미라의 과학적 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프랑스의 생화학자 모리스 뷔카이유가 한 강연회에서 미라 제작의 신비를 묻는 질문에, '인간의 지식과 과학으로는 이 신비를 풀 수 없다. 이것은 신의 작품임에 틀림없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자신이 신에 귀의하게 되었노라고 감동적으로 대답한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신을 믿지 않던 팔순의 자연 과학자가 미라의 제작과 약물 처리, 색채의 신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신의 몫으로 돌려 버림으로써 미라는 인간의 과학적인 지혜의 산물이 아니라 영원히 신화가 숨쉬는 인류의 꿈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