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레바나가 자세를 고쳐 앉자 시녀는 레바나의 다리에 베드 트레이를 걸쳐놓고 천으로 된 냅킨을 둘러주었다. 그리고 몇백 년 전 지구에서 들여온 수제 도자기 잔에 재스민 차를 따른 다음, 조그만 민트잎 두 개를 띄우고 꿀을 뿌렸다. 레바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시녀는 크림 페이스트리가 담겨 있는 접시의 뚜껑을 열어 보여준 다음, 한 입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빵을 잘게 썰었다. 시녀가 빵을 써는 동안 레바나는 알록달록한 과일들이 놓인 접시에 눈길을 주었다. 말랑말랑한 복숭아 주위에 블랙베리와 레드베리를 빙 두르고 전체적으로 슈거 파우더를 듬뿍 뿌려놓았다. “전하,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응, 이거면 됐어. 20분 후에 그 시녀를 올려 보내줘. 상복을 준비해야 하니까.” --- p.10
“너는 저 남자의 생각을 갖고 놀고 있잖아.” 채너리의 얼굴에 능글맞은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조금만 더 눈이 높았다면 차라리 자랑스러웠을 거야. 왕실 근위병이라니, 솔직히 좀 그렇지 않니? 저 남자랑 끝나면 다음에는 정원사랑 눈이 맞는 거니?” 레바나는 언니를 노려보았다. “위선 떨지 마. 그동안 언니가 데리고 논 근위병만 대체 몇 명이야?” “음, 셀 수 없이 많지.” 채너리는 손에 든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다음 교활한 미소를 띤 채 잔을 내려 양귀비색 내용물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냄새를 한번 맡아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재미를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이상적인 귀족 가문의 여자라면 한 번에 장난감이 세 개는 되어야지. 로맨틱한 장난감 하나, 침대에서 잘하는 장난감 하나, 비싼 보석으로 나를 치장해줄 장난감 하나.” --- p.94
“동방연방 황실 사람들의 사진을 좀 봤는데…… 꽤 끌리더라고.” 채너리는 아이의 젖병을 떼려고 했지만, 아기 셀린이 울먹이며 손을 내밀어 젖병을 다시 입안에 집어넣었다. “황실 사람들? 동방연방 왕자라면 아직 어린애 아냐?” “응, 이제 겨우 걷기 시작했지.” 채너리는 딸을 굽어보며 아기의 머리카락에 코를 비벼댔다. “처음에는 그 꼬마 왕자가 완벽한 내 딸의 완벽한 배필이 되겠구나 생각했어.” 채너리는 다시 시선을 들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니, 나라고 결혼 못 할 것도 없지. 그리고 그 황제가 꽤 잘생겼거든. 어깨도 넓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뭐 다소 지루해 보이기는 하지만, 지구인들이 원래 그렇잖니.” --- p.137
“나는 너를 구해주려고 했어.” 레바나는 동작을 멈췄다. 통증 때문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언니의 눈에는 분노로 번득거리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뭐라고?” “기억 안 나니, 동생아? 내가 여기 들어와서 네가 난로에서 진짜 불을 갖고 노는 걸 발견했잖아. 그리고 네가 넘어진 거 기억 안 나? 홀로그램처럼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내가 너를 구출하려다가 나도 데었잖아.” 레바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발이 카펫에 딱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무서움이나 불안 때문이 아니었다. 채너리가 마법으로 레바나의 손발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