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1장 매화 향 가득하니, 봄이다! 기차 안에서 ● 기차는 늘 시간 속을 달린다 아아, 섬진강 ● 섬진강을 따라 걸으면 나도 강물이 되어 흐른다 고흥반도 ● 봄은 늘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지리산 불무장등 무착대 ●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고 있네,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 다압리 매화마을 ● 꽃은 절정인데 매향을 들을 수 없다 운주사 ● 그러나 나는 쉬고 있는 부처가 좋다 2장 옛 사람의 마음에 취하다 적벽 ● 이제 달 뜨면 아름다울 이곳에 있지 못하리 해남 두륜산 대흥사 ● 아름다운 고목과 청허당의 마음이 있는 곳 강진 ● 햇빛과 동백 그리고 옛사람 그리운 백련사 다산초당 ● 천일각에 가면 그가 뒷짐을 지고 구강포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네 칠량 봉황리 ● 가업을 이어가기는 어렵고, 세상은 아직 알아주지 않는다 고금도 충무사 ● 아무도 없는 늦은 오후 이곳에 오면 한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마량의 밤 ● 여관에서, 그리움으로 마량의 아침 ● 산다는 건 망설임이며 차마 어쩔 수 없음이다 관산 방촌리 ● 날은 미칠 듯 맑은데 오래 묵은 매화 한 그루 만발해 있다 3장 바다와 바람 그리고 길 장환 일몰 ● 바다가 하도 찬란해 쳐다볼 수 없다 천관 초야 ● 보면, 그대 역시 잊지 못할 것이다 천관산 장천오미 ● 숨겨두고 혼자 즐긴다는 말의 의미를 아는가 천관산 장안사 ● 아름다움이 바로 문 밖에 있으니 또 어디로 가랴 가지산 보림사 ● 옛 사람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4장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땅끝 사자봉에서 보길도 격자봉까지 ●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데 나도 바닷길을 따라 그 섬에 가고 싶다 보옥리 뾰족산 ● 이곳을 놓치면 보길도를 보았다고 하기 어렵다 보길도 예송리 ● 바다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완도 선착장 ● 부두에 매여 있는 배들을 보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장좌리 장도 ● 바람과 파도 속에서 그때를 아쉬워한다 완도에서 녹동까지 ● 아름다운 한려수도 푸른 뱃길을 따라 하동 쌍계사 ● 벚꽃은 이미 지고 목포 ●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5장 아름다운 섬 이야기 흑산도 ● 흑산도에는 아직 홍어가 있고 예리 포구에는 옛날의 정취가 남아 있다 홍도 ● 아름답고 슬픈 구녕섬 관매도 ● 잘록한 허리에 천리향 향기로운 섬 진도 용장산성과 제주 항파두리 ● 항전 9개월, 또 2년 그리고 700년 뒤 한라산 ● 구름 속 눈 위의 산책 귀환 ● 다시 일상으로 후기 사진작가의 말 |
具本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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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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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쓰던 밥그릇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초판 서문」중에서
지금 아무 계획도 없다. 행선지조차도 없다. 표는 구례까지 끊었지만 순천까지 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곡성쯤에서 내릴까? 그래서 압록의 강변을 따라 걸을까? 아니, 한 정거장쯤 전인 남원에서 내려? 안 될 것 없지. 공간적 자유, 그것은 아무데서나 내려도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계획도 목적지도 없다. 발길 닿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혹은 기억을 따라서 혹은 그저 기대를 따라서. 혹은 꽃을 따라서 강물을 따라서. --- 1장 「기차 안에서」 중에서 경치의 정점에 있기 위해서는 알맞은 때에 그곳에 있어야 한다. 어느 곳이든 가장 자기다울 때, 바로 그때 그곳에 있어야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이곳은 보름달밤에 와야 한다. 그래야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다. 겨우 사정하여 신분증을 맡기고 두 시간 통행권을 얻은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서 적벽의 달밤을 볼 수 있으랴. --- 2장 「이서 적벽」 중에서 바다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푸른빛을 음미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철썩거리며 들어오고 다시 빠져나갈 때 작은 갯돌들이 구르는 소리가 난다. 저쪽 구석에서 먼저 부서진 파도가 내는 소리를 듣고 이어 다시 이곳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파도가 싣고 오는 바다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이다. 바다의 체취는 바람에 실려 온다. 그 속에는 미역, 김, 파래, 톳 같은 것들의 싱싱함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지금처럼 눈을 덮고 누워 손가락을 조금씩 꼬물거려 갯돌들을 더듬어보는 것이다. 매끄럽기 한량없다. 조금 거친 것들도 있고 완벽한 매끄러움으로 손가락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도 있다. 또 있다. 간혹 바다가 만들어주는 소리들에 가벼운 변주를 더해주는 것이다.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갯돌을 누운 상태에서 하늘로 던지는 것이다. 잠시 후 바다에 퐁 빠지는 그 소리는 연주회에서 간혹 들리는 탬버린 소리처럼 경쾌하다. --- 4장 「보길도 예송리」중에서 이상하게 매운탕이나 회는 절대로 1인분을 팔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설득해보았는데 그럴듯한 이유는 대지 않고 무조건 최소한 2인분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아니, 두 마리 넣을 것 한 마리만 넣어 끓여주면 될 것 아닌가? 꼭 한 군데서 2인분에 2만 원 하는 매운탕을 1만 5,000원어치로 덜어 끓여준다고 해서 먹은 적이 있는데 남겼다. 매운탕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그랬다. 땅끝에서 새우를 됫박으로 파는 집이 있었는데, 작고 빨간 중하가 여간 맛있게 생기지 않았다. 술안주로 좋을 것 같아 반 되만 사려 했더니 그렇게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배낭 속에 새우를 한 되씩 사서 넣고 다닐 수 없어 그러니 그렇게 해달래도 막무가내로 안 된다는 것이다. --- 4장 「완도에서 녹동까지」중에서 가끔 운이 좋으면 더덕주나 매실주를 잘 고를 수 있다. 좋은 술이면 좀 무겁더라도 큰 것 한 병을 산다. 그리고 작은 물병에 옮겨 담아 한 병은 배낭 깊숙이 넣어 두고 또 한 병은 언제나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둔다. 두 병을 채우고도 남는 것은 물론 좋은 술을 구한 기념으로 그날 안에 마셔준다. 가지고 다니다가 하루 일정 중 최고의 경치라고 느껴지는 곳, 양말을 벗고 탁족을 할 수 있는 곳에서 한두 잔 하면, 그것처럼 좋은 것도 없다. --- 4장 「하동 쌍계사」 중에서 |
구본형과 윤광준의 인연
구본형과 윤광준은 각기 경제경영과 예술 분야에서 꾸준히 저서를 발표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구본형의 대표서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면 윤광준에게는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두 권 모두 10만 권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 『떠남과 만남』에서 두 작가가 함께 작업한 것은 우선 윤광준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독자인 데에서 연유한다. 1998년 출간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구본형의 첫 번째 저서로 1999년 교보문고가 발표한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의 책 100선’에 선정되었던, 그 당시 많은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았던 책이다. 윤광준은 이 책을 읽고 “남이 먹여주는 밥 대신 스스로 찾는 밥이 더 소중하다는 자각”(『떠남과 만남』, 224쪽)을 얻은 한 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사진작가의 말」에서 그는 구본형이 자기 인생의 멘토 중 한 명이라고 밝힌다. 구본형 소장이 “변신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출발의 은인”(223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떠남과 만남』을 위한 세 번의 여행을 함께 떠난다. 변화의 임계점에 도달하기 위한 구본형의 50일간의 여행 『떠남과 만남』은 구본형의 네 번째 저서로, 초판은 2000년에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구본형의 15종의 저서(공저, 번역 제외) 중 경제경영서로 분류되지 않는 책이라는 점에서 희귀하다(경제경영서가 아닌 책으로는 『일상의 황홀』 정도만 있다). 이 책에 실린 남도여행을 떠날 당시 구본형은 20년간 근무한 직장에서 퇴사한 직후였다. 그리하여 이 여행은 20년간 몸에 밴 직장인으로서의 관습과 철저히 결별하겠다는 의미를 갖기도 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 월급에 대한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15쪽)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20년 만의 휴가, 한 달 반의 여행은『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에 이어 ‘변화’라는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 없이 떠난 게으른 여행은 자연으로부터 얻은 영감과 더불어 진짜 나를 만나는 여행을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갔을 때는 이전과는 다르리라는 다짐이 가능하다.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첫째, 더 자유로울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할 것이다. 둘째,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진지함을 버릴 것이다. 셋째,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주제넘지 말 일이다. 내가 만족한 나의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생략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었다. - 1장 「기차 안에서」중에서 위의 다짐을 보면,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무료 대학을 열어 평범한 인물들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구본형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8년 전의 여행은 지금의 구본형을 있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남도의 꽃길을 따라 이 책은 3월에서 시작하여 4월로 끝이 난다. 그리하여 그 첫 장의 제목이 “매화 향 가득하니, 봄이다!” 이다. 이 한 달 반의 여행을 “섬진강변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틀림없이 매화 때문이었다”(26쪽)고 말하는 구본형의 바람은 섬진강변 질경이의 짙은 색과 씀바귀 가득 핀 풍경, 산수유는 지금 막 피어나기 시작하고 매화는 그야말로 절정인 봄을 만끽하는 것에서 시작하여(1장 「아아, 섬진강」 중에서) 장천재 부근의 작은 동백숲을 보며 대학때 거제도에서 보았던 동백과 둘째아이를 데리고 거문도에 갔을 때 보았던 동백을 떠올리는 것으로(3장 「장천오미」 중에서) 여행 내내 이어진다. 이 여행은 남도의 매화, 동백, 벚꽃을 따라 이어지는 꽃길 여행인 것이다. 국사암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하동에서 쌍계사로 오는 국도의 연장선과 만난다. 칠불사로 가는 길에는 아직도 벚꽃이 볼 만한 정도로 달려 있다. 여기 심어져 있는 벚나무들은 아직 어리다. 하동에서 쌍계사까지 가는 길가에 서 있는 고목만큼 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꽃이 조금 늦게 피기 시작한 모양이다.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꽃잎들이 비처럼 떨어진다. 거의 동그라미에 가까운 꽃잎이 한 장씩 떨어져 날린다. 신기한 것은 꽃잎이 구르는 모습이다. 일단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누운 꽃잎들 위로 바람이 불면 모든 꽃잎이 일어나 마치 굴렁쇠가 구르듯 도로 위를 달린다. 어째서 그런 모양으로 구르는지 알 수 없지만 여간 신기하지 않다. - 4장 「하동 쌍계사」 중에서 옛사람의 정취를 따라 이 행적에 꽃길만큼 중요한 것은 옛사람의 흔적이다. 세속의 명리와 기준에 묶이지 않는 서산대사의 향취에 젖기도 하고(2장 「해남 두륜산 대흥사」 중에서) 강진으로 유배를 옴으로써 자신을 위한 ‘겨를을 찾은’ 다산처럼 마음을 놓아두기도 한다(2장 「다산초당」 중에서). 그밖에 옛사람의 정취를 따라가는 길은 강진의 혜장선사, 고금도 충무사의 이순신, 보길도의 윤선도와 윤두서, 장도의 장보고, 흑산도의 최익현, 제주 항파두리성의 김통정으로 이 책 내내 이어진다. 여기 있는 나무들 중에 아주 오래된 놈들은 충무공이 아침에 일어나 해변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충무공의 시신이 배에 실려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많은 장졸이 통곡하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고, 무덤이 파이고 관이 잠시 안치되는 것 또한 보았을 것이다…(중략)…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