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 거의 그런일이 일어날 뻔했다는걸 알아차리며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몸뿐만 아니라 인생까지 그에게 휘둘릴 뻔했다. 그가 심어준 의존심이 어느순간에 신뢰로 바뀌고, 마침내 그를 기쁘게 하기위해서 기꺼이 제다라를 내주게 될 것이다. 그생각에 그녀는 소름이 끼쳤다.
'왜 나한테 이런 얘길 하는거죠?'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너에대한 내 감정은 언제나 혼란스러워. 어쩌면 내가 너의 소중한 것을 모조리 망가뜨리기 전에 네가 싸워 주길 바라는지도 모르지...하지만 나도 병에 걸렸어. 널 원해.'
--- p.221
'비록 네 목을 졸라 버리고 싶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걸 잃을 생각은 없어. 아무도 널 내게서 빼앗아 가지 못해. 그 황제도 나폴레옹도 .... 그리고 너 조차도.'
그녀의 마음에 희망이 되살아났지만 그걸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아직도 날 애인으로 두고 싶으세요?'
'내 말을 뭘로 들었나? 우린 카잔에 도착하자마자 결혼할거야.'
결혼. 그녀의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전에도 그 말을 믿지못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믿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왜요?'
'나한테 감상적인 속삭임을 바라는 거라면 지금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의 용서를 바라지 않아요.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알아.'
한순간 그의 얼굴에서 딱딱함이 다소 풀렸다.
' 네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너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아니야. 당장이라도 이 수건을 벗겨내고 널 눈속으로 내던지고 싶지만 널 잃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가 문으로 걸어갔다.
'잠이나 푹 자둬. 내일 새벽에 출발할거야.'
--- p.377-378
마리아나가 밖으로 나가자 조던은 거대한 두 마리 말이 묶인 마차 옆에 기대어 서 있었다.
"오래 걸렸군."
그가 하인에게 말고삐를 넘기며 그녀의 팔을 붙잡고, 마당 가운데에 있는 분수 쪽으로 그녀를 이끌어갔다.
"걸으면서 얘기하지."
그녀의 긴장하는 몸짓에 그가 피식 미소지었다.
"겁내지 마. 하인들이 득실거리는 마당 한가운데서 널 어쩌지는 않을 테니까."
"겁내는 게 아니라 당신과의 접촉이 싫을 뿐이라구요."
"어린 처녀에게 걸맞는 기특한 태도로군. 내가 너의 후견인만 아니었어도 그 말에 반박했을 거야."
그녀가 팔을 뿌리치려 하자 그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말은 하지 않겠어."
그녀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 p.117
그녀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녀가 믿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것, 그는 여자를 설득하는데 한 번도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요람에서 벗어나자마자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을 터득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커다란 눈의 소녀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난 친절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따라 행동한 적은 없지. 그건 끔찍이도 지루한 일어거든. 내가 너희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데에는 물론 다른 이유가 있지. 하지만 그걸 강요할 생각은 없어. 나와 같이 가겠다면 난 너희들에게 음식과 집을 제공하고, 보호자가 되어 줄 것이다. 나와 같이 가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해도 돼. 이 페허에서 네 동생이 굶어죽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