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안 가면 왜 논다고 생각하지? 이래 봬도 알바하면서 엄청 치열하게 살고 있어. 도서관에서 매일 책 읽고, 신문 보고 영어 공부도 해. 꼭 대학에 가야만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몇 년 뒤에 대학에 갈 거야. 스무 살에 입학해도 요즘은 휴학을 많이 하니까 늦게 대학에 가도 친구들하고 비슷하게 졸업할 수 있어.” --- p.23~24
“좋은 작품일수록 권력층들은 싫어하죠. 늘 욕먹을 각오로 촬영하고 있습니다. 욕을 많이 먹어서, 만수무강할 운명이겠죠?” 감독 아저씨의 순박한 눈이 빛났다. 손짓도 예사롭지 않았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학교 고발 동영상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나를 징계할 만큼 내가 촬영한 영상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닐까. 영화감독을 보니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휴대 전화로 ‘영화’를 검색했다. --- p.49
고등학교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될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지금까지 내가 세운 계획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열심히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 p.82~83
대기업 하청 공장에서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고, 복직 투쟁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를 위로하는 촛불 추모제를 하고 있었다. 광장이 어느 때보다 밝은 밤이었다. 광장이 환해질수록 우리는 더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야 한다. 불이 켜지면 순식간에 흩어지는 바퀴벌레들처럼. --- p.91~92
“회사에 맞게 자기소개서를 쓰니까 다중인격자가 된 것 같아.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아야 하는데, 회사에 맞는 나를 만들고 있어.” --- p.159
할머니는 김치를 썰어서 뚝배기에 넣고, 그 위에 두부를 올려놓았다. 나는 그릇에 밥을 가득 펐다. 밥상에는 김치찌개와 깻잎절임, 무말랭이가 전부였지만 어느 호텔 뷔페보다 더 맛있었다. 김치찌개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며 휴지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눈치 보지 않고 배 터지게 먹는 걸 보니 뭐든 하겠구나. 밥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