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변혁의 시대, 거품이 성장의 발판이다
애완용 금붕어 가운데 버블 아이(Bubble Eye)라는 종이 있다. ‘거품 눈’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이 녀석은 성장하면서 볼따구니가 커지는데 꼭 눈이 커지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물론 너무 커지면 터진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배 터진 개구리 이야기에서처럼 죽고 말까? 아니다.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거품이 성장의 발판이다. 참 다행한 일 아닌가!
모든 면에서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을 이끌어온 기조가 변해가고 있다. 이제 누구나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성의 힘이 무섭기는 해도 ‘한강의 기적’ 시대의 환상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그는 장님이거나 남을 속이려는 위선자일 것이다. 우리는 거품이 꺼져 가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버블 아이처럼 비포 앤 애프터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워가야 할 때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간은 더 먼 미래를 위한 철저한 준비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 경제는 이제 2퍼센트대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 오일쇼크와 정치 불안으로 1980년에 마이너스 1.9퍼센트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무려 10퍼센트대의 고성장을 계속하던 한국은 외환위기(1998년 마이너스 5.9퍼센트), 신용불량자 양산 사태(2003년 2.8퍼센트),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2.3퍼센트, 2009년 0.3퍼센트) 등으로 부침을 겪다가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후 2011년에 경제성장률 3.6퍼센트(물가상승률 4.0퍼센트), 2012년에 2.4퍼센트(물가상승률 2.3퍼센트)로 심각한 저성장 구도로 들어섰다.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연 7퍼센트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 세계 7대 강국 도약) 같은 걸 당장에 이루자고 주장하는 경제전문가는 이제 없으며, 그들은 향후 세계 경제가 나아지더라도 한국이 4퍼센트대의 성장도 결코 쉽지 않은 목표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그 정도면 훌륭한 성장이다. 일본이 현재의 성장률 정도로 계속 정체된다면 2030년이 되기 전에 한국인의 1인당 GDP가 일본을 넘어서는 결과를 낳을 목표이기 때문이다.
모든 거품은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부터 생긴다. 부동산 투자 불패 신화가 부동산 거품을 낳은 것과 같다. 한국 경제는 산업화 시대의 고속 성장과 부동산, 주식 시장의 성장에서 많은 기대를 낳았고 거품이 생겼다. 이 과정이 무려 수십 년간 이어졌기 때문에 관성이 생겼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뼈저린 아픔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거품은 다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급하게 기대를 철회하는 것도 거품 붕괴의 고통스러운 흔적을 남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품은 낙관적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거품은 건설적인 투자조차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게 되었다. ‘거품 그리고 비포 앤 애프터’는 달리 말하면 ‘불안과 모색의 앞뒤’가 될 것이다. 생활 전반에 걸쳐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지되 다른 한편으로는 또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거품 이후 우리에게는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바뀌지 않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트렌드 분석에서 찾고자 한다.
2013년 이후의 미래 환경은 어떤 기대를 남기고 어떤 절망을 안길 것인가? 먼저 짚어야 할 점은 이 책이 경기를 전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정보는 경제연구소나 한국개발연구원(KDI) 혹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 신용평가기관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예측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 환경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트렌드들이다. 경기 전망이 안고 있는 불확실성보다는 좀 더 확실한 트렌드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한국트렌드연구소는 2007년 이후,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으로서 10개의 메가트렌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메가트렌드’란 전 세계적 규모로 수십 년의 긴 기간 동안 모든 사회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의미한다. 나라마다 변화의 시점이나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부터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 이르는 모든 나라들은 이 메가트렌드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10개의 메가트렌드는 고령화, 개성화, 디지털화, 도시화, 영리한 단순화, 글로벌화, 일상적 안심, 아시아로의 부의 이동, 환경과 윤리, 신뢰자본이다. 2020년이 궁금하다면 이 메가트렌드의 성장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2013년, 2014년, 2015년…… 이 거대한 쏠림 현상은 때로는 명백하게 우리의 시선 아래에 놓이고, 때로는 유행이나 패드(FAD, 1~2년의 전 사회적 붐이라는 의미)의 수면 아래에서 숨은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메가트렌드가 10년, 20년의 장기적 변화를 반영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해마다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변화인 이머징 트렌드를 예측해온 것이다. ‘이머징 트렌드’란 아직 거대한 시장으로까지는 형성되지 않은, 그러나 미래로의 필연성이 있는 성장 시장의 트렌드다. 그 필연성의 배경에는 메가트렌드가 있다. 즉 중장기적 변화의 방향 속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큰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메가트렌드를 이해하면 새로운 이머징 트렌드의 필연성을 알게 된다.
이머징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다면 미래의 시간을 벌 수 있다. 시간점유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치는 경기 호황과 불황, 고성장과 저성장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적용된다. 이머징 트렌드를 알게 되면 경기 전망이나 단기적인 유행, 마케팅 이벤트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미래를 주시할 수 있게 된다.
거품의 붕괴 속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 있다. 기회를 찾아 헤매는 새로운 모색도 있다. 2013년 이후 한국 사회가 이와 같을 것이다. 현명한 대처도 자포자기도 하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기대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기대가 남아 있다면 미래는 위기이거나 기회다. 누군가 기대를 버렸다고 해도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에 미래는 여전히 위기이거나 기회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이유든 선택을 한다. 거품이 붕괴되고,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예견되는 시기에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이전과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불안과 모색의 시대, 우리가 주목해야 할 트렌드로 한국트렌드연구소는 다음 10개의 키워드를 뽑았다. 거품청년(Bubble Young man), 스마트 에이전트(Smart Agent), 하이 사이클링(Hi-cycling), 이미지 라이징(Image Rising), 지능형 아카이브(Intelligent Archive), 프리크라임(Precrime), 클린 리워드(Clean Reward), 가격 아닌 가격(Price Non Price), 시민참여도시(Citizen Friendly City), 핫아시안(Hot Asians). 각각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어떤 트렌드는 불안을 배경으로 하는 것에 가깝고, 또 다른 트렌드는 모색 쪽에 힘이 실린다. 그 중에는 10년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중장기적 해결책에 가까운 것이 있고, 좀 더 단기적인 해결책(1~2년이 아니라 5년 이상 유지될 수 있는)도 있다. 불안은 온전히 위기 상황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미래에 더 많은 불안을 가져도 여전히 그 속에 기회가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트렌드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모색이라는 것도 오로지 희망적인 것이 아니라 위기도 있다. 모든 신규 비즈니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머징 트렌드는 아직 시장이 성숙하기 전이므로 더 많은 위험 속에서 모험을 걸어야 할 것이다.
비즈니스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을 넘어서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우리는 아슬아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저성장, 빈부격차, 사회 전반의 낮은 신뢰 수준, 대기업과 수출 위주의 편중된 경제구조, 부의 승계의 구조화, 세대갈등, 미래 첨단산업의 동력 부족 등 숱한 난제들 속을 비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게릴라 시대다. 한국인 모두가 게릴라들이다. 국가나 정부의 중장기적 계획, 개인이나 기업 하나하나마다 게릴라적인 성장 잠재력 향상이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도 활력을 가져오는 시대다. 트렌드에서 기회를 찾아보자. 더 많은 사람이 기회를 찾으면 좋겠다. 사회 전체가 성장 잠재력을 다시 키워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