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을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한 뒤 일본에 건너가 고학으로 공부하였으며,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22년 현진건·홍사용·이상화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며 이듬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고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때부터 작품 경향을 바꾸어 자연주의적 수법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1925년 《여명》 창간호에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하였는데, 한국 근대 문학사상 가장 우수한 단편 중의 하나로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날카로운 필치로 많은 작품을 써서 천재 작가로 알려졌으나 1926년 귀국한 뒤 얼마 되지 않아 폐병으로 2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작품으로는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환희(幻戱)」「옛날의 꿈은 창백(蒼白)하더이다」「은화백동화(銀貨白銅貨)」「17원50전(十七圓五十錢)」「행랑자식」「자기를 찾기 전」「벙어리 삼룡이」「물레방아」「뽕」 등이 있다.
초기에는 작가의 처지와 비슷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행랑자식」·「자기를 찾기 전」 등을 계기로 시대적인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 나도향은 빈곤의 문제 등 냉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극복의지를 드러내는 주인공들을 내세우려 했는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 「벙어리 삼룡」·「물레방아」·「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