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삼천포 출생으로 언어치료사의 길을 걷다 현재는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첨단인지브레인 센터 원장이다. 노트 귀퉁이에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며, 언젠가는 그림 동화책 한 권은 꼭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나, 주로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을 찍고 있다. 보드게임을 즐기나, 주로 어른들과 게임을 한다. 같이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게 아이가 어서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하고잡이’임을 자처한다. 직업, 결혼, 여행, 사진, 작가의 꿈, 머지않아 떠나게 될 가족 세계 여행 등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찾고 그 길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이러한 성격이 바로 아버지의 교육에서 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죽기 전까지는 나에 대한 부모님의 교육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힘들고 고생스러울 것 같아 처음에는 온 힘을 다해 반대하지만, 네가 끝끝내 그것을 하겠다고 하면 그 일이 무엇이든 제일 잘되기를 바라는 것 또한 부모 마음이다.” --- p.186
누군가 아버지가 가진 보석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쉽게 답할 자신이 없다. 버츄 프로젝트에서 나온 ‘미덕의 보석들’을 하나하나씩 읽어 보니 아버지가 가진 보석들이 대부분 들어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아 즐겁게 하려는 열정적인 태도, 찬물도 감사히 여기며 받을 줄 아는 마음, 쉽게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과 끈기, 자식에 대한 믿음, 긍정적인 생각… 이 모든 보석들은 그 보석이 빛나야 할 때 빛이 났다. --- p.250
학년이 바뀌어 새 교과서를 가져온 날에는 달력과 비닐로 곱게 책 껍질을 싸 주셨다. 매일 필통을 확인하며 연필을 직접 깎아 주셨다. 연필 깎기라는 것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몹시 갖고 싶었다. 삼각형 모양의 연필 깎기를 가진 아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그때까지 아버지께서 항상 연필을 깎아 주셨다. 아버지께서는 연필심을 짧게 깎으셨고 끝도 뾰족하게 하지 않으셨다. 연필 깎기로 깎은 연필은 끝이 뾰족해서 글씨가 더 잘 써질 것 같았다. “아빠, 우리도 연필 깎기 사요. 아버지 연필 깎으시려면 힘드시잖아요”라고 말하며 은근 아버지께서 힘드시니 연필 깎기를 사자고 얘기했다. 아버지께서 웃으시며 “밥 먹고 연필 깎을 힘도 없으면 우짜노”라고 말씀하셨다. --- p.99
어쩌다 물을 떠 오라고 하실 때도 명령어를 쓰신 기억이 없다. “물 한 잔 줄래?”라고 부탁을 하셨다. 커피를 드신 뒤에는 컵을 개수대에 직접 넣으셨고 씻기에 편하라고 물을 부어놓으셨다. 아버지께서는 선생님이 아니라 교육자셨다. 말이 아닌 몸으로 가르치셨고 배우려는 자세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아버지를 볼 때면 ‘진정한 교육자는 타고나 는 것일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교육학과 관련된 책 한 권 읽은 적도 없으시다.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어디에서 배우신 걸까? --- p.68
난 찻숟갈로 미지근한 물을 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다. 마른 골짜기에 물 흐르는 소리가 목에서 났다. 아버지는 혈관만 마른 게 아니라 온몸의 살이 모두 빠져나가 아기처럼 작아지셨다. 아버지께서 눈을 뜨고 나를 보셨다. 난 아버지 옆에 누웠다.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를 알기에 내가 가면 아버지 옆자리는 무조건 나에게 양보했다. 아버지에게 난 0순위였다. 나에겐 아버지가 0순위였다. 부산으로 가기 싫었다. 아버지 곁에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