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엑스트라, 밤게, 한치, 덧니, 악어새로 비유하는 그는 상해, 북경, 내몽고, 항저우, 고비사막 등 국내외를 넘나드는 개방적인 시적 지평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들이 한낱 기행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것들을 넉넉히 감당하는 진실한 체험과 더불어 “넘놀지 않고서는 한시도 감당할 수 없는” 시인적 기상이 담보되어 있는 까닭이다. 더구나 “나라와 제도를 잊”는 탈존과 기투(企投)를 통해, 그의 시들은 아득한 거리의 삶의 순간들과 역사적 장소를 현전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명제들 사이의 연관성을 투시하지 못한 채 엉성한 말장난에 기댄 시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드러낸다. “왜 없는 놈들은 역사를 통틀어 엑스트라”일 수밖에 없는가란 매우 도전적인 시적 화두를 제기하고 있는 그에 대한 기대는 단연 여기에서 발생한다. “반성”할 줄 모르는 “혁명 놀이” 또는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하기 위해 “스스로를 불발”시키며 “봉기의 창끝”을 “동천(冬天)”에 세우고 있다. 무엇보다도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은 놈들”에 의해 짓밟히고 억눌린 선조 또는 역사의 기억에 “반칙”을 범하면서까지 “억압받는 민중이라면/중국인도, 일본인도/다같은 민족”이라는 세계시민적 인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비록 그가 “국외자”가 되어 낯선 국경을 떠돌지만 그의 심층 무의식에 “뜨거운 모래”처럼 흐르는, “영(靈)과 육(肉)이 하나”로 약동하는 전통의 기운생동적 세계에도 소홀히 하고 있지 않기에 우린 “도랑의 물을 먹삼”아 큰 붓과 같은 “큰마음으로 세상에 뛰어들되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자 하는 그의 다짐을 더욱 굳게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임동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