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점에서 우리가 단지 결과뿐 아니라 행동의 의도와 동기를 고려한다는 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덕 윤리(virtue ethics)’라고 하는데, 경우에 따라 행동의 도덕성을 달리 해석한다는 점에서는 결과주의와 유사하나, 개별 행동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행동 주체의 ‘덕’을 고찰한다는 것이 다르다. 덕 윤리에서는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보다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집중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혹은 타인을 위해 그랬는지, 자신의 내적 도덕성에 따른 결정인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윤리에 따르면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한다면, 그 선택이 거짓말일지라도 또 그것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당신의 행동은 도덕적이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당신의 도덕성을 보여준다.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Chapter 1: 관계」중에서
먼저 롤스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그에게 공정이란 정의의 근본이 되는 원칙이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특권층으로 태어나 노력 없이 정상에 올라 큰돈을 번다고 해도, 이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고 울부짖을 것이냐고 묻는다. 아마 조용한 곳에서 홀로 ‘그래, 세상이 딱히 공평한 것은 아니지’라고 인정할지는 몰라도, 크게 불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소득자는 ‘평등’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시기’라고 외면한다. 반면 저소득자는 점차 커지는 불평등 문제를 ‘탐욕’이라 비난한다. 둘 다 맞을 수는 없는 일인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 더 공정한 방법을 생각해낼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롤스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다른 이들과 창업을 하려 하는데, 당신이 고위임원이 될지, 중간층 경영진이 될지 아니면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임금체계와 근무시간을 결정하는 데 이런 상황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롤스는 이해당사자들이 어떠한 대안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모르는 상황을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고 했다. 이런 무지의 베일 뒤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당신은 아마 모두에게 가장 공정한 체계를 선택할 것이다.
---「Chapter 2: 일」중에서
안락사를 예로 들어보자.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이는 살인은 잘못된 것이라는 법에 예외를 만들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온갖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어떤 이는 안락사를 악용해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친척을 제거하려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저 단순히 싫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려 할 것이며, 돈을 노리고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이 자신의 권한을 악용해 장기간 병상을 지키던 환자를 순식간에 제거해 침대를 비우게 만들어 병원 예산 감축을 꾀할 위험도 존재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제정신이 아닌 독재자가 장애인과 정신병자 그리고 자신들이 선택한 ‘열등한’ 인간의 비자발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기는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홉스는 덧붙일 것이다.
---「Chapter 3: 라이프스타일」중에서
이쯤에서 서양에서는 지베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아부 무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이 예의 바르게 끼어들 것이다. 그는 물리학자, 약사이자 철학자인 자신이 디오게네스보다는 식품의 영양적 장단점을 더 잘 알고 있지 않겠느냐며 말문을 연 뒤, 디오게네스가 말한 ‘자연적’이라거나 ‘화학적’이라는 단어는 사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지적할 것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독당근같이 독이 섞인 ‘자연적’인 음식을 먹고 죽기도 하므로, 자연적이라고 해서 모두 다 건강에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건강에 해로울 것도 없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가 실험실에서 여러 물질을 혼합해 만든 약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도 인간에게 이롭지 않던가. 이런 맥락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30대에 죽는 것이 ‘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조상들의 평균 수명은 한때 30대였다), 그게 좋을 게 뭐란 말인가? ‘화학적인 물질’로 가득하다는 불평에 대해서 그는 그의 선구적인 화학연구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은 ‘화학물질’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수한 물은 수소와 산소(모두 화학물질이다)로 이뤄져 있고, 온천수에도 다량의 무기물과 유기화학물질이 들어 있다고 말이다.
---「Chapter 4: 여가시간」중에서
특정 행동이나 관념이 일단 규범이 되면, 그것은 반드시 ‘선한’ 것이고 그 규범에서 벗어난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형성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들을 필요가 없다. 규범에서 ‘벗어난’ 것은 모두 금기이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압제정권에서조차 지배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심하게 강요하지 않는다. 지배적인 도덕이 그 기능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 도덕은 원인이라기보다는 징후다. 예를 들어, 지배층이 동성애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라고 말한다고 해도, 이는 그 사회의 공공연한 금기를 반영한 발언일 뿐, 지배층만의 생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미 대다수의 대중은 동성애를 처벌 가능한 범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나쁘다는 것은 그 사회의 사고체계에 뿌리 깊이 박혀 있어, 똑같이 생각하도록 설득당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당신에게 가해지는 명백한 압박이 없다면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