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때 ‘리(理)’는 이치, 원리, 법칙을 뜻하는 말이므로 일리가 있다는 말은 ‘적어도 이치에 맞는 점이 하나는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치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일리만 있는 처방으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는데, 예컨대 다른 처방들은 이런 일리의 처방 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비명상적인 처방들에 일리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처방들에는 나름대로 이치에 맞는 점이 있다. 그러나 그 이치는 나뭇잎 하나하나, 또는 가지 하나하나에 맞을 뿐 나무 전체에 맞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일리가 있는 처방이라는 말은 구리를 결한 처방이라는 뜻도 되는 것이다.
문제를 뿌리로부터 다룰 때만이 문제의 연속은 해소될 수 있다. 문제의 뿌리에서 해결 방법이 나온다면 그 해결 방법은 지엽 말단적인 것이 아닌, 근원적인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런 방법만이 십리를 모두 갖춘, 문제의 연속인 삶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는데, 위빠사나 명상이 바로 그것이다.
-제 1부 1장 「명상을 향하여」 중에서
악코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로 바랏와자라는 이름의 형과 아래로 두 동생이 있었다. 이들 네 형제는 모두 욕을 잘하기로 유명하였는데, 맏형 바랏와자의 아내는 마침 붓다의 재가 신자였다.
바랏와자는 어느 날 자기 아내가 붓다를 지극히 존경하는 것에 화가 나 붓다를 찾아갔는데, 도리어 붓다의 거룩한 태도에 감명을 받고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악코사는 붓다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붓다를 찾아가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는 욕 잘하는 사형제 가운데서도 가장 욕을 잘하는 사람이었으며, 성격 또한 매우 난폭하였다.
그러나 붓다는 거기에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 잠잠해지자 붓다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여, 예를 들어 어느 날 그대에게 손님이 찾아왔다고 하자. 그래서 그대가 음식을 장만하여 그에게 내놓았으나 그는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면 그 음식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나에게 돌아올 것이오.”
이에 붓다는 말하였다.
“그와 같이 그대여, 그대는 지금 나에게 많은 음식은 내놓았으나 나는 그것에 손대지 않았노라.”
이에 악코사는 큰 충격과 함께 감동을 받아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아우들 또한 비슷한 과정을 밟아 모두 붓다의 출가 제자가 되었다.
-제 1부 2장 「편견과 선입견부터 버린다」 중에서
구심의 힘을 기르면 마음이 대상에 빨려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강기질자나 약기질자는 유사시에 그렇게 하기 어려우므로 평상시에 마음의 회귀를 연습해야 한다.
그렇게 회귀를 연습하다가 적절한 때가 되면 알아차림이라는 그 다음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즉 회귀해 돌아와 여섯 감각 기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즐거움은 욕망 없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향상되고, 괴로움은 객관화를 거쳐 약화, 소멸된다. 즉 다음 두 단계로 심리 향상이 연습되어야 한다.
(1) 회귀 : 구심의 힘으로 대상에 끌려가는 마음을 회귀시킨다.
(2) 알아차림 : 알아차림으로써 욕망을 순화시킨다.
이상 두 단계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집중력과 지혜를 계발할 수 있다. 회귀는 주로 집중력을 길러 주고, 알아차림은 지혜를 길러 주기 때문이다.
-제 3부 3장 「사마타 명상」 중에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또 다른 차이점은 명상 주제가 외부에 있느냐 자신이냐에도 있다. 사마타 수행의 주제인 하느님이나 책(독서) 등은 나 자신이 아니다. 따라서 명상의 대가일지라도 어느 시점에선가 명상을 그만두어야 한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동안 하느님이나 책에 마음을 모을 수는 있지만 하루 종일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어느 시점에선가 그는 마음을 명상 주제에서 분리시켜 자신이 할 일을 해야 한다. 식사를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대소변을 보아야 할 때, 걸어야 할 때, 말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위빠사나 명상자는 집중하여 알아차려야 하는 대상이 자신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 그는 앉아서 명상을 할 때는 물론, 명상이 끝나고 나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의 현상을 알아차려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는 식사를 할 때는 식사하고 있는 자신의 몸의 움직임, 감각 따위를 알아차린다. 대소변을 볼 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며, 걸어야 할 때, 말해야 할 때도 같다. 따라서 탁월한 위빠사나 명상자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명상을 계속할 수 있다.
-제 3부 4장 「위빠사나 명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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