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김경훈은 1965년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전공과는 무관하게 학창시절 교내에서 문학연구회 활동을 하는 한편, 대학들간의 연합체인 문학동아리를 창설하면서 문화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가 사회를 접근하는 방식은 ‘존재적 기반이 사고를 결정한다’는 데 있다. ‘국내 트렌드 분석가’로 잘 알려진 그는 최근엔 출판기획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 문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문사회 부문의 베스트셀러를 잇따라 발표했다. 1994년에는 『한국인 트렌드』로 전경련에서 주는 ‘자유경제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한국인 트렌드』『한인의 66가지 얼굴』『논술키워드 2000』『10일 만에 배우는 경제학 2000년』 등이 있다.
연산군 11년 10월 20일자 기록을 보면 연산군은 이날 눈이 올 조짐이 있다 하여 좌의정 박숭질로 하여금 군사를 감독하여 사냥을 하라고 보냈다. 이때의 청계산 사냥에도 군사 5만명이 동원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박숭질이 돌아와 임금에게 그날 사냥한 것을 바치니, 연산군이 이를 보고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정승으로서 5만명을 데려가 고작 꿩 한 마리를 잡았는가?” 5만명을 동원해 잡은 꿩 한 마리. 그 꿩 한 마리를 위해 좌의정이 산을 타고, 5만명이 짐승을 몰러다니고, 한강에는 예전에 없었던 8백척짜리 배다리가 놓였던 것이다. 로마의 네로황제와 난형난제인 셈이다.
--- P.98~99
조선의 독특한 구호제도의 하나가 혼인보조금 제도이다. … 왕이 직접 개인의 혼사까지 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종 22년에 내린 전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성종은 집안 사정으로 혼인하지 못한 처녀들의 혼인 비용을 관에서 부담하도록 다시 명령을 내리면서 “인륜의 도리는 혼인보다 중한 것이 없고, 제왕의 정사는 원녀, 광부曠夫가 없게 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원녀란 혼인을 못하여 원한을 갖게 된 여인을 말하고, 광부란 장년의 독신 남자를 뜻하는 것으로 여기서 광曠이란 글자는 허송세월을 했다는 뜻이다. 즉 백성들이 혼인을 하지 못함으로 해서 원한을 갖거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하는 것을 왕의 중요한 정사의 하나로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