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이후로 중국 내외에서 정치적 안건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시진핑을 보면 정계에서 그가 부상한 데에는 어떤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로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가 상기해 보아야 할 점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고, 그 후에도 주석 자리에 오를 만한 인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사람들 가운데 유력한 후보도 아니었고, 그저 예상되는 경쟁 상대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중략) 1990년대에 시진핑이 중국 주석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아마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시진핑이 얼마나 인기가 없는 인물이었는지 보여주는 일례로 1997년 그가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선출 선거에서 떨어진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후보위원 선출에서도 한 자리 차이로 위원이 될 수 없었지만 정원보다 한 자리를 늘리는 교묘한 수법을 통해 겨우 마지막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청리와 같은 논평가들은 새로 취임한 후진타오 주석의 후임으로는 리커창이 확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2장 사람 시진핑 」중에서
중국공산당은 국민이 국가에 대해 가지는 신망이나 감정적 애착에 기생하고 있는 셈이며, 여기에 공산당은 자신이 국가의 성장에 가장 도움이 되고 강력하며 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지켜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존재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려 애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공산당은 자신의 역할과 속성에 대해 웅장하면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한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공산당 관리들은 중국공산당이 서구의 정당과는 다르다는 점을 열성적으로 강조한다. 그들은 서구의 정당은 특수 이익 집단이나 일부 계층의 우려 사항만을 대변하는 정치적 노리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공산당은 일반 정당보다 더 거대하고 위대하며, 좌파부터 우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견과 생각을 전부 아우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공산당은 국가 안의 국가와 같은 위치이며 자신만의 보편성과 포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정치적인 행동이나 고급 기능으로 영역을 국한하지 않고, 문화적, 윤리적, 정신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집단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자신만의 자율성과 완전성을 지닌 로마가톨릭교회와 섬뜩하게 닮았다. ---「제1장 현대 중국의 권력 사냥」중에서
부패에 반대하는 운동(적어도 시진핑이 진행하고 있는 반부패 운동)은 중국의 공산당 및 정부 관료들에게 더 나은 처신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전략적인 방안의 하나로 이를 고도로 정치 이슈화시켜 공산당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23 2012년 이후 진행 중인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을 살펴보면 두 영역 간의 경계가 흐리기는 하 지만 정치적인 면이 윤리적인 면보다 우선시되고 있다. 공산당 내부의 적을 대상으로 일련의 조사와 숙청 작업을 실시하고, 저우융캉이나 보시라이와 같은 잠재적 대항세력을 제거하였으며, 성장 속도가 줄어든 시대에 접어들자 공산당의 안정적 통치에 위협이 되는 국유 부문의 비효율적 기업 운영을 맹비난하고 있다. 부패 행위 단속 활동을 살펴보면 시진핑의 통치하에서도 공산당의 행동이 사리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객관적 윤리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공산당의 활동이 실제로 어떤 근거에 기반하고 있건 반부패 운동을 실시하면서 당이 객관적 정의, 미덕, 그리고 도덕적 가치의 편에 서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러한 점들이 공산당 권위와 권력의 주요 원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