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실상’이라는 뜻은 ‘아래에 서 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곧 실상은 집을 지을 때 집을 받쳐 주는 기초와 같습니다. 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단어가 ‘증거’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 한 채를 새로 샀다고 합시다. 우리가 그 집에 살지 않지만 그 집은 우리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 집이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그 집이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보여 줍니까? 집문서입니다. 바로 집문서와 같은 것이 믿음입니다. 집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문서를 근거로 우리가 산 집이 우리 것이 된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을 믿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근거해서 믿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 근거해서 믿어야 합니다. --- p. 27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가장 성경적이고, 건강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대상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믿음과 신뢰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비인격적인 우상이나 물건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물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 pp. 36-37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믿음의 점진적인 발전을 보게 됩니다.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 앞에 가인보다 더 나은 예물을 드린 믿음이었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넘어서 하나님이 명하신 일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노아의 믿음은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는 귀한 과업을 성취하는 믿음이었습니다. --- p. 85
사라는 두려워서 자신이 웃었음을 부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키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겨자씨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듭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겨자씨와 같은 믿음에 물을 주심으로 굳세게 키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의심과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신은 좋지 않습니다. 불신은 무조건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심은 믿고 싶은데 아직 정보와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을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심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 p. 125
믿음의 영향력과 축복은 그 후손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라합이 믿음의 길을 선택했을 때 그것은 좁은 길이었습니다.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했던 가나안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복된 선택이었습니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선택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족 전체의 운명을 바꾼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라합은 유다 지파에 속하게 됩니다. 라합은 유다 지파에 속한 살몬과 결혼해서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해서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