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직장에서 바쁘게 돌아치다가 아이가 집에 도착할 시간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그때 희경이 나이 여섯 살.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면 혼자 집으로 와 초인종을 누르게 되어 있는데 엄마가 없으면 아이는 아파트단지를 헤매고 다닐 것이다. 5천여 세대가 사는 초대형단지라 길을 잃으면 찾기도 쉽지 않은 곳인데... 눈앞이 까마득했다. 정신없이 뛰어내달아 아파트에 도착해보니 집앞과 아파트 현관 어디에도 아이는 없었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돼서 길도 잘 모를텐데 어디로 갔을까.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아이를 찾아 헤매다가 길거리 한가운데서 어떤 아기엄마와 서 있는 희경이를 발견했다. 그 엄마는 같은 층에 살면서 가끔 만나면 눈인사만 나누는 사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그 엄마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다.
"아유, 아이를 잘 챙기셔야지. 다음부터는 늦을 것 같으면 우리집에 보내세요."
물론 칠칠치 못한 엄마에 대한 책망 같은 거였다. 나를 발견한 희경이는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를 묻자 희경이가 울먹이면서 대답했다. 어둑한 저녁, 엄마가 언제 집에 올지 몰라 무서워서 동생 희수를 맡아 키워주시는 아줌마 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고.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음을 어린이집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고마운 충고를 해주셨다.
"그럴 땐 너 무서웠지? 고생했지? 하시지 말고, 너 혼자서 그렇게 아줌마 집을 찾아갈 마음을 먹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우리 희경이가 다 컸어, 하고 격려해 주세요."
물론 뒤늦은 멘트이긴 했지만 다음날 퇴근 후 희경이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어제 오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 희경이 정말 대단해. 어쩜 그렇게 당황하지 않고 아줌마를 찾아나설 생각을 했을까?"
그랬더니 어제 이후 어두웠던 아이의 얼굴이 일시에 활짝 개면서 자부심에 눈이 빛나는 게 아닌가. 아이의 상처가 영광의 훈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도사야.
--- pp. 53~55
온통 매끄럽고 단단하며 두터운 대리석 벽이 내 앞에 가로막혀 있다. 나는 그 앞에 웅크리고 양손톱을 모두 세워 그 벽을 피나도록 긁는다. 벽 너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엄마, 엄마'하며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 간신히 몸을 일으키지만 나는 다시 주저앉는다. 벽이 너무 두텁고 단단하다. 내 울음소리는 목이 막혀 꺽꺽대다 그만 잦아든다.
어떤 아이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처음 보는 아이인데 웬지 낯이 익다. 세상에, 그런데 저 아이의 머리가 왜 그런가... 자그만 머리통은 녹슨 기계 따위로 듬성듬성 흉하게 박박 밀려있고 얼굴과 팔다리는 끔찍하게 말랐으며 머루 같은 눈만 커다랗게 흡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엄마!'라고 나를 부르던 처연한 음성.
--- pp.208-209
아이 둘을 데리고 동분서주하던 어느 날, 분명히 샤워하고 잘 잤는데 일어나 보니 얼굴이 정확하게 둘로 나뉘어 한 쪽은 퉁퉁 부어 눈도 잘 떠지지 않았다. 벌에 쏘인 것처럼 부어오른 얼굴을 찬물에 닦으며 거울을 보았다. '이렇게 열심히 애 키우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내 심정이 그랬다. 그때 남편이 마구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분통에서 꺼낸 듯 깨끗하고 예쁜 아이들 뒤에 있는, 싸구려 '츄리닝'과 목둘레가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내 얼굴에 희미한 슬픔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자부심이었으니 참 정상은 아니었지 싶다. 내 존재의 가치를 보일 곳은 오로지 '엄마'라는 것 하나뿐이어서 그렇게 매달린 것일까. 아니면 내게는 오지 않을 복을 준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부채감이었을까.
그러나 단 한시도 떼어놓으면 아이가 비정상이 될 것 같고, 나는 나쁜 엄마가 될 것 같은 생각에 노심초사 동동거리고 산 것은 만 7년, 첫 아이 우선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였다. 그때 결혼생활은 8년을 향해 가고 있었고, 나이는 서른이 확 넘어버렸으며 아이를 키우면서 틈틈이 읽은 책과 이웃과의 만남과 경험에서 얻은 생각들로 머리와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는 건강하고, 집안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지만, 내 속은 갈갈이 찢겨져 상처투성이었고,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게 만든 자신도, 세상도 온통 불합리해 보였다.
--- p. 156
더이상 엄마가 만들어준 그런 집은 없다. 여자가 직엄을 갖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가정을 병행시키기에는 모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기대치가 너무 높다는 애기다. 나는 사회적인 기준치 엄마에 맞출 수가 없었다. 그 말은 내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갈 때나 집에 혼자 있는 아이를 생각할 때나 주부의 따사로운 손길이 가지 않은 티가 역력한 내 집을 볼 때나 텅텅 비어 있기 일쑤인 냉장고를 열었을 때나 쌓여 있는 빨래거리르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때 수도 없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 본문 중에서
그 때 말은 안 해도 전업주부인 나는 현실에 짜증을 내고 있다는 것이 짚어졌다. 술을 잘 먹고, 나름대고 시도 쓰고, 밤늦게 잘 돌아다니고, 마음 내키면 멀리 여행을 확 떠나버리곤 했던 자유분방한 여자가 자기 모습을 한 순간에 버리고 생전 술도 한 모금 안 마시던 여자처럼 집밖의 일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요조숙녀나 바보처럼 스스로 속이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남 보기 좋으라고 가정교육을 잘 받은 여자처럼 살고 싶어 그랬다는 사실까지도...당시 난 아무와도 소통이 없었다. 이웃의 전업주부인 여자들과의 교류는 너무나 답답했다. 도무지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생각도 너무나 달랐고 그들이 가진 상식과 내가 가진 상식이 맞지 않았다. 아이 때문에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놀이터에서 가볍게 나누는 이야기도, 아이나 남편이나 결혼에 대해 나누는 약간 진지한 말도 전혀 재밌지 않았다. 서서히 그들과 연격되던 약간의 교류도 끊어져 갔다. 복도식 아파트의 한 층에 있는 다섯가구의 여자들이 나만 빼고 아이를 안고 이집저집으로 옮겨 다니면서 점심을 먹고 빈대떡을 부쳐먹고 백화점에 쇼핑가는 것을 홀로 떨어져서 봐야했다. 소외된 서러움은 없었다. 오히려 선택한 왕따라고나 할까. 심지어 난 전업주부들을 비웃고 있었다. 난 애가 둘이어도 집안일 다 끝내고도 책 읽을 시간이 나더라는 오만에 빠져 그들을 바보 취급했던 것이다. 그네들 입장에선 내가 얼마나 재수없었을까.
--- p.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