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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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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1987

: 박종철과 한국 민주화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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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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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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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41.6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8.7만자, 약 2.6만 단어, A4 약 55쪽?
ISBN13 9788927809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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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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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신성호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언론학박사)에서 공부했다. 대학 4학년이던 1980년 10월 중앙일보·동양방송 기자 시험에 합격했으나 다음 달 단행된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합격이 취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1981년 10월 공채 18기로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이후 30년 동안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사회부 법조 출입 기자(12년), 정치부 국회 출입 기자, 국제부장, 전국부장, 사회부장, 사회담당 부국장과 논설위원, 수석논설위원을 거쳐 계열사인 정보사업단 대표이사를 지냈다. 수석논설위원이던 2007년에는 고려대 초빙교수로 미디어학부에서 1년간 강의했다. 2011년 말 중앙일보를 퇴직한 뒤 2012년부터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2014년 3월 성균관대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언론 실무 관련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특종 보도로 1987년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법조언론인클럽 초대 회장과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 위원,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조인력양성제도개선 자문위원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명예훼손분쟁조정부의장,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 위원, 대통령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 등으로 활동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를 썼으며 『6월 항쟁을 기록하다』『한국을 뒤흔든 특종?의 집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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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1987년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종전의 간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도 시대적 흐름, 커져가는 시민의식 등으로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6월 항쟁은 민주화라는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것을 이뤄 낸 과정에서 시민들이 하나가 됐다는 데도 그 의의가 있다. 즉 정치권이 주도한 위로부터의 민주화가 아니라 시민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박종철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시민 중심 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 p.15, 「1987년을 기억하며」

“경찰, 큰일 났어.”
6년째 법조를 출입하고 있던 나는 이홍규 과장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어설프게 덤벼들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검찰 간부들은 비교적 보안 의식이 철저하기 때문에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경찰들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그의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이건 서울대생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이 아닌가.
--- p.25, 「박종철 사건 보도, 그 숨 가빴던 24시간의 기록」

당시 나는 내심 큰 특종을 했다고 생각했고, 1면은 아니어도 최소한 사회면 중간톱 정도는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사는 사회면 2단으로 실렸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그런 곳에 실린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느 선배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1단짜리 보도에서 비롯됐어. 박종철 사건도 역사적인 특종이 될 거야”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중요한 것은 기사의 위치가 아니다. ‘박종철이 라는 젊은 학생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자체다. 진실된 기사는 위치에 상관없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회자된다.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 p.38, 「박종철 사건 보도, 그 숨 가빴던 24시간의 기록」

정권 중반인 1985년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강압 정치는 더욱 거세졌다. 1988년 정권 이양을 앞두고 군부의 장기집권에 걸림돌이 되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였다.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동원했다. 경찰은 공안사건 수사에 한 계급 특진 등 포상을 내걸고 수사를 독려했다. 이런 분위기가 결국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강압 수사를 부채질한 것이다.
--- p.78, 「대한민국 민주화는 박종철 사건 전후로 나뉜다」

박종철 사건이 없었거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우리도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독재정권이라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열망을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이 4·13 호헌 조치를 통해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로 임기 7년의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려했음을 감안한다면 박종철 사건은 우리의 민주화를 적어도 몇 년은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 pp.85~86, 「대한민국 민주화는 박종철 사건 전후로 나뉜다」

1980년대 우리나라 언론은 국민의 여론을 전달하고 사회의 실상을 보도하는 역할을 올곧게 수행하지 못했다. 80년대 언론은 ‘땡전뉴스’ ‘권언유착’ ‘언론통제’ 등과 같이 부정적인 말로 대변된 다. ‘땡전뉴스’는 TV에서 저녁 9시를 알리는 ‘땡’ 소리가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대통령 관련 뉴스를 내보내던 것을 비꼰 말이다. 여기에는 당시 언론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 p.109, 「언론, 민주화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다」

중앙일보의 첫 보도 이후 경찰은 1월 15일 오후 6시쯤 공식 발표를 통해 박종철 군의 사망 사실을 시인했다. 이 발표에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기자들에게 고문 사실을 숨긴 채 사망 경위를 ‘심장마비’로 설명했다. 또한 이 자리에 배석했던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치안감은 “책상을 ‘탁’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덧붙였다.
--- p.134,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1987년 1월 15일 “경찰, 큰일 났어”라는 말 한마디는 박종철이라는 젊은이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는 단초가 됐다. 이 말은 또 1987년 6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6월 항쟁’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했던 이가 이홍규 당시 대검찰청 공안4과장이라는 사실은 필자가 2012년 박사학위 논문 〈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를 통해 밝히기 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중략) 딥 스로트는 취재원과 취재기자의 신뢰관계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홍규 전 대검 공안4과장은 나에게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 것과 관련해 “워낙 민감한 사건인지라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신성호 기자를 믿었다”고 말했다.
--- pp.154~155,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

연행 학생들의 신병 처리 방향을 취재하기 위해 11월 1일 오전 서울지검 공안부에 들렀던 나는 한 검사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구속 대상이 몇 명쯤이냐는 나의 질문에 그가 “모두 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연행자가 너무 많아 짧은 시간에 학생들의 의식화 정도와 구체적
인 범행 사실을 가리기 어렵다. 학생 모두를 일단 구속한 뒤 기소 단계에서 선별하기로 했다.”
--- p.176,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 사회 각계각층의 움직임」

6·29선언은 1987년 1월 박종철 군의 죽음을 시작으로 6월 범국민적 항쟁을 통해 이끌어낸 국민 승리의 결과였다. 민주화 이후엔 6·29선언의 진실을 둘러싸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민정당 대표 측이 서로 자신의 업적이라며 다투기도 했다.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지만 야권의 분열로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있다. 하지만 6·29선언은 국민이 하나가 되어 얻은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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