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통째로 메울 듯이 산비둘기 떼가 과수원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고 있었다.
“이놈드으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 민주려는 부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살랑살랑 바람을 부치기 시작했다.
“회오리쳐라! 빙글빙글 회오리쳐라!”
바람에서 회오리바람이 나간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만 흐트러뜨렸지, 별 효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물의 주술을 쓰려고 해도, 잘못해서 저 새 떼가 과일나무 위에 떨어진다면? 복숭아는 상처 나고 일당은 호로록 날아간다.
그건 절대 안 돼!
민주려는 손목이 저리도록 부채질을 했다. 화가 나서 두 팔을 번쩍 드는데, 그런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는 큰 손이 있었다.
“어?”
“잠시만 빌리지.”
부채가 그 큰 손에 들렸다. 부드럽게 휘저어지는 부채, 그리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힘 있는 바람이 산비둘기 떼에게 날아갔다.
“바람의 아가씨, 도와주오.”
낮고 덤덤한 목소리에 까르르 바람의 신령이 웃었다. 그리고 산비둘기 떼들을 강하게 후려쳤다! 하늘에서 산비둘기 떼의 깃털들이 우수수 쏟아지고, 강한 바람에 의해 저 산 너머로 새들이 날려갔다.
굉장한 바람의 주술력. 민주려는 이렇게 주술을 잘 쓰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선배!”
지야곤. 그가 나타났다.
장어를 먹은 그 뒤로, 바쁜지 좀처럼 만날 수 없던 그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민주려는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살펴봤다.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난 요망한 얼굴이 바로 이 얼굴이렷다.
“뭐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무 유심히 뜯어본 탓일까. 지야곤이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다. 분명 다 큰 성인인데, 얼굴도 덤덤하니 잘생겼을 뿐인데, 왜 저렇게 귀여운 거지? 민주려는 끄으응 신음을 내며 화제를 애써 돌렸다.
“그런데 선배, 여기는 웬일이세요?”
“별장에 왔다.”
“별장이요? 이 근처에 선배네 별장도 있어요?”
이 과수원 전체가 지 가문의 소유야. 뒤에 이어지는 말에 민주려는 그만 넋을 놓았다. 어쩐지 관리인만 있고 주인은 없더라니.
“도와줄까?”
“폐가 되잖아요.”
“괜찮아. 대가는…….”
“가마솥 볶음밥. 고기기름에 마늘 넣고, 죽순과 비장의 파 양념을 넣은 것. 참고로 고기는 돼지 앞다리살!”
“음, 충분해.”
손발을 맞춘 지 꽤 되어서인지 거래성사도 빨랐다.
“어휴. 일이 많다, 많아.”
관리인이 새참 가지러 간다고 말해놓고 사라지자, 민주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슨 일이 이렇게 많은지 끝이 안 보인다. 서리꾼도 많고, 복숭아를 노리는 짐승도 많다. 아이들을 넘기고 나니 곰이 나타나서 어찌나 놀랐는지.
“좀 자.”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한숨 자고 더 열심히 일해.”
주술을 남발하기도 했지만, 야산 전체를 감시한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었다. 이래서 둘째 날이 힘들다고 관리인이 말했던 거로구나. 민주려는 감기는 눈에 혀를 찼다 미안해서 거절하고 싶어도 눈꺼풀이 이미 반쯤 감겼다.
“선배.”
“응.”
“가마솥 볶음밥 위에 계란부침 추가해줄게요오…….”
최소한의 타협을 외친 뒤 원두막 기둥에 머리를 기대자마자 스르르 잠이 쏟아졌다.
“……자나.”
지야곤은 색색 소리를 내는 민주려를 흘끔 보았다.
“후우.”
한숨을 폭 내쉰다. 대체 누구 때문에 몸이 달았는지 민주려는 모를 것이다. 별장에 내려왔는데 그녀를 딱 마주친 지야곤의 심장이 어떻게 내려앉았는지도.
그는 간간이 날아드는 새나 짐승을 쫓아냈다. 지야곤이 그렇게 이것저것 신경 쓰며 일을 처리하는데, 어깨에 가벼운 뭔가가 얹어졌다.
“우음.”
기둥에 잘만 기대 자더니만, 민주려의 머리가 쓰러지며 그의 어깨에 닿은 것이다.
“우우웅.”
새근새근 잘만 잔다. 남의 속도 모르고. 지야곤은 손가락을 들어 그 폭신한 뺨을 쿡 찔렀다. 요 며칠 사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얼굴이 이 얼굴이다.
“아우, 이우으으.”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민주려의 잠꼬대가 유독 심하다. 손발을 휘적이는데 이대로 내버려두면 떨어질지도 모른다.
지야곤은 허공을 휘적이는 작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보드랍고 작은 손을 꼭 쥐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품에 쏙 들어오는 민주려. 머리가 그의 턱 끝에 닿았다. 아이 안듯이 안아놓고 내려다보자 잘만 자는 태평한 얼굴이 보인다.
지야곤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콩 맞대었다.
“네가 좋아.”
아무도 듣지 못할 그의 속내.
“민주려.”
과수원 안 원두막 안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복숭아 열매만큼 달콤한 냄새가 풀풀 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