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허허벌판에 서서 백제 문화의 독자성이나 국제성을 상상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그렇다고 부족한 볼거리를 채워 줄 상징적인 조형물이나 기념비적인 건물을 복원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제 뭔가 다른 방법으로 백제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유적이나 유물을 마주하면서 거시적인 시각으로 백제를 관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_'프롤로그_ 나의 백제 예찬'
백제 유물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보통 세련되고 귀족적이며 우아하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백제 유물들을 전시했을 때 그러한 평가를 할 만한 것은 오직 사비기밖에 없다. 부여에서 발견된 각종 금속공예품과 수막새, 무늬벽돌, 토기들은 새로운 미의식을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백제의 아름다움은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인 사비기가 중심이고, 백제 문화가 최고조에 달한 사비기를 연구하는 것이 백제 연구의 본질에 더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또 사비기에 관한 연구야말로 당시 공백으로 남아 있던 백제사 연구를 보완하고, 그 후 통일신라로 이어지는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되어 줄 것이라 여겼다. _'제2장 기와 파편 하나가 가진 의미를 깨닫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언제 건립되었을까’라는 문제는 정림사지 연구에 관한 모든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절터 전체에서 출토된 유물의 조합이나 유물과 건물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정림사지에서 나온 흙으로 만든 소조상은 백제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자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논문을 쓰지 않았다. 소조상들이 고고학도 미술사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절터에서 나온 유물이라도 미술사학계에서는 불상이나 도자기에, 고고학계에서는 토기나 기와에, 건축사학계에서는 기단 등 건물터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었다. 학계가 서로 소통하거나 융합하기보다 자신들의 학문적 아이덴티티만 강조하면서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림사지 소조상들이 원래 어디에 안치되어 있었을까’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기존의 학문적인 패러다임을 뒤집는 것이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주제로 우리를 안내한다. _'제3장 새로운 질문으로 새로운 해석을 만든다'
부여박물관 창고지기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보물 창고구나’라는 것이었다. 부여와 그 주변 지역에서 일제강점기부터 수집한 거의 모든 자료가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오랜 세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여박물관을 거쳐 갔는데도 아직까지 소개조차 되지 않은 자료들이 남아 있다는 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너무 기대하지 마시라. 대부분 깨지고 부서진 파편들이었으니까. 모처럼 만난 선후배들에게 수장고에서 뭔가 대단한 자료를 발견했다며 호들갑을 떨어도 사진을 보여 주면 모두들 실망을 금치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_'제4장 이야기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일본인 고고학자들의 고적 조사 사업에 대한 평가는 그 입장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실제 조사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은 ‘일본인이 한반도에 남긴 사업 중에서 세계에 자랑해도 부족함이 없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연구자들은 ‘우리 민족의 문화재를 파괴, 약탈하는 것이었고 그 성과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그들의 학문적 순수성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들의 연구 목적과 시각은 철저하게 일본 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타자화된 시선에서 비롯되었다. 부여 지역 절터에 대한 조사는 일본 고대 문화의 시발점이 된 아스카와 그것을 상징하는 호류지 및 쇼토쿠 태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_'제5장 일본이 탐한 백제사 연구'
경주공고에서 출토된 대통사식 수막새와 통쪽와통으로 제작된 암키와, 미구 부분을 점토띠로 접합한 유단식 수키와, 선단을 유단식으로 만든 암막새 등은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 전체가 백제계 기와 제작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실로 엄청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존의 문헌 기록과 매우 다른 것이었다. 신라 최초의 사원인 흥륜사에 대해서는 『삼국유사』를 비롯한 많은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것이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은 단 한 곳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들은 그것이 전적으로 웅진기 백제의 기술이 적용된 것이며, 북조보다는 남조에서 시작된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지금까지 신라의 불교 수용 과정에서 빠져 있던 백제의 영향을 처음으로 실물로서 확인시켜 준 것이다. _'제6장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 백제'
국립박물관 수장고는 발굴에서 나온 소중한 문화유산이 보관된 곳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스런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 이병호 관장은 그 보물 창고에서 백제의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열정적인 큐레이터다. 20여 년 동안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면서 유물을 직접 조사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까지의 경험을 다룬 이야기는 자못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파편만 남은 유적과 유물 들 속에서 1,400년 전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를 이끌던 문화 강국 백제의 진면목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 이건무(전 국립중앙박물관장·문화재청장)
백제는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사료의 부족으로 깊이 연구되지 못했다. 다행히 문헌사학자이면서도 고고학 자료를 폭넓게 섭렵하는 이병호 관장 같은 뛰어난 신진 연구자들이 있어 잠들어 있던 백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불교문화 전파 과정에서 경유지로 평가받았던 백제를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신라와 일본에 백제적인 불교문화를 전파한 나라로 재조명한 이 관장의 주장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에 의해 재조명된 백제사가 더 많은 독자들에게 공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성시(일본 와세다대학 부총장, 『만들어진 고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