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학교에서 의류학을 공부했으며 지금은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 『내 사랑 도토리』, 『왜 물이 사라지면 안 되나요?』, 『1학년 창작동화』, 『1학년 이솝우화』, 『1학년 전래동화』, 『1학년 명작동화』,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책을 좋아했을까?』, 『장영실, 신분을 뛰어넘은 천재 과학자』,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등이 있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할 수 없게 된 헬렌은 바닥에 드러누워 발을 버둥거리며 의자를 찼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그래도 헬렌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벌떡 일어나 설리번 선생의 의자를 잡고 흔들며 소란을 피웠다. 식사 자리가 난장판이 되어 갔다. 가족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보다 못한 켈러 씨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겠어요. 선생님이라도 헬렌의 고집은 꺾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요. 바로잡으려고 수없이 시도해 봤지만 일만 더 커질 뿐이었어요.” 헬렌의 가족들은 평화로운 생활을 원했다. 반대로 설리번 선생은 소란스러운 전쟁 없이 헬렌을 일깨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울컥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헬렌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고 해서 평생 이대로 놔두실 건가요? 전 억지로 헬렌의 고집을 꺾으려는 게 아닙니다. 헬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아이니까요. 그래서 전 텅 비고 소통 없는 외로움 속에서 나오게 하려는 겁니다.” --- p.31-32
지칠 줄 모르는 설리번 선생의 격려 덕분에 헬렌은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완성된 그 글은 헬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열두 살짜리 소녀가 누구의 도움도 전혀 받지 않고 쓴’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헬렌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끌어냈다. 헬렌은 사람들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감동받았던 음악이나 여행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전 나이아가라 폭포에 무척 놀랐어요. 지금도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막상 헬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가 그런 것을 어떻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헬렌, 당신은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를 볼 수도 없고 크르릉 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도 없잖아요? 대체 당신이 무엇을 느꼈다는 거죠?” 헬렌은 사람들의 대꾸에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보고 들으면 다 아는 걸까요? 그렇다면 사랑과 선의, 종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마음에 다가오는 인상은 보고 듣는 것으로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 p.67-68
나는 사람들의 손에서 말없는 웅변을 듣는다. 어떤 손은 무척 무례하다. 어떤 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차갑다. 마치 북동풍과 악수를 나누는 것처럼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어떤 손은 태양 광선처럼 가슴까지 따뜻하게 만든다. 꼭 달라붙은 어린아이의 손에는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는 것 같은 무한한 햇살이 들어 있다. 마음이 담긴 악수는 진짜배기 기쁨의 원천이다.
오로지 손의 감각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리는 헬렌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보고 듣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장애인은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구걸로 삶을 연명하던 시절,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만에 눈과 귀가 멀면서 말도 못하게 된다. 이후, 존재하지만 누구하고도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유령과도 같았던 헬렌 켈러는 자랄수록 고집 세고 난폭한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일곱 살에 만나게 된 앤 설리번 선생의 헌신적인 사랑과 교육 덕분에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고, 하버드 대학의 여자학부인 래드클리프 대학을 장애인 최초로 졸업하게 된다. 이후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을 뿐 아니라 노동 운동과 반전 운동 등 사회 문제에 깊이 참여하게 된 헬렌 켈러는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외면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갔다.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면서 자신의 고통을 빛으로 일군 헬렌 켈러는 살아생전에 ‘미국의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 추앙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