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려서부터 수없이 경험해 온 정신적 트라우마들이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감수성이 예민하여 아픈 기억을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좋은 기억보다는 아픈 마음의 상처가 가슴속에 깊게 자리 잡고 쉽게 지워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처들을 어떻게 지워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글을 써 보기로 했다. 글 쓰는 게 직업은 아니지만, 쓰면서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그 순간만큼이라도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긴 탓도 있겠다. 지난 세월을 정리해 보고 남은 인생을 좀 더 잘 살아 봐야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막상 누군가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기도 한다. 감추고 싶었던 내 속마음을 드러내 놓은 기분이다.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려고 시작한 일이 또 다른 상처를 불러올까 걱정도 된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 노고에 대한 조그마한 보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솔직히 부끄럽다. 남의 일기를 몰래 훔쳐본다는 기분으로 읽어 줬으면 좋겠다. 마치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가다가 낮은 담벼락 너머 남의 집을 아무 생각 없이 슬쩍 들여다보듯이 보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見人之善 而尋其之善 見人之惡 而尋其之惡 如此方是有益 (다른 사람의 착한 점을 보면 내게도 그런 착한 점이 있나 살펴보고,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보면 내게도 그런 나쁜 점이 있나 살펴봐라. 이렇게 해야 보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