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죽고 싶은 거야?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친다. 그네가 입을 비틀며 웃는다. 아니요 다 같이 죽고 싶어요. ---「플라나리아」중에서
플라나리아 ‘나’는 방금 산부인과에서 다섯 번째로 긁어 버린 핏덩이가 생각난다. 개새끼, 콘돔을 빼버리다니. 낳구 보자구? 좋아, 다음엔 낳아 가지고 시멘트 바닥에 패댁질쳐 죽일 거다. ㅎㅎ, 이 상태론 더 이상 임신이 힘들 거라고? 이런 오라질, 그 의사 새끼, 칼을 어떻게 댄 거야. 플라나리아 ‘나’는 하복부의 심한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린다. ---「플라나리아」중에서
“그래, 엄마는 죽었어. 불타 죽었다. 그 새끼가 불 싸질러 죽인 거야.” “그게 누군데?” “너지?” 나는 갑자기 맥이 풀렸다. 성냥 불빛에 어른거리는 형의 얼굴은 광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침묵의 눈」중에서
서울이란 데가 싫어 죽겠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향으로 내려가 버릴까 궁리를 합니다. 아무도 나 같은 인간을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내가 만약 자동차에 깔려 죽었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난 이상하게 아무나 막 찔러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나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밉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춘자 씨가 같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즐겁습니다. ---「전야」중에서
우리 집엔 병신이 둘이다. 나는 내 친구들한테 서슴없이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가끔 남들처럼 막벌이를 하기 위해서 노동판에 섞이기도 했다. ---「아베의 가족」중에서
“그럼 제가 그 사람들을 사랑해야 되겠어요? 난 이제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요. 미운 건 오직 내가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그 의문이에요. 나는 이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