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에게 올림포스 산은 절대적 힘을 지닌 신들의 권좌였다. 이 산을 고향으로 삼은 신들은 하늘과 땅은 물론, 그곳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물을 다스렸다. 우주를 지배하는 신들은 거대한 가계를 이루었고, 논쟁을 벌이며 자존심을 세우다가 고초를 겪곤 했다. 신들은 변덕을 부릴 때도 있고 헌신을 다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는 일에서만큼은 한결같아서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이 있으면 무자비하게 응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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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우시스 비의(그리스어로 ‘신비의식’)에서 행해지는 일은 그 자체가 신비에 싸여 있다. 비의 입문자인 ‘미스테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설할 경우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들의 체험담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는 문헌 속에 에둘러 표현한 것들과 그림에서 묘사된 내용을 토대로 비의가 의미하는 바를 재구성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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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이 조우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들을 찾아내 가능한 한 여러 요소들을 혼합시키길 좋아했다. 이런 태도를 혼합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신은 양쪽 문명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에페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고대 아시아인들은 대모신 키벨레로 추정되는 짐승들의 여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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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르의 왕궁 위치와 관련 있는 장소는 적어도 (펠로폰네소스의 서해안을 따라 북쪽에 있는) 두 곳이었다. 하나는 『일리아스』와 『호메로스 찬가』의 헤르메스 편에 나온 지리적 표현과 일치하는 곳으로, 알페우스 강과 엘리스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블레겐이 코라의 왕궁에서 발굴한 선형문자 B 점토판에서 필로스라는 지명을 확인한 뒤, 오늘날 이 왕궁 유적지는 “네스토르 왕궁”으로 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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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키스로 항해하기 위해 이아손은 아르고스에게 배의 건조를 의뢰했고, 펠리온 산의 소나무들을 베어 건조한 선박을 그의 이름을 따서 ‘아르고호’라 명명했다. 한편, 아테나 여신은 도도나에 있는 신성한 떡갈나무로 사람의 말을 하는 널빤지를 만들어 뱃머리에 끼워 넣었다. 선원들(아르고나우타이, 즉 ‘아르고호 원정대’)을 모집하기 위해 이아손은 자신 또래의 용맹한 영웅들을 불러 모았다. 이들 중에는 스파르타의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칼리돈의 멜레아그로스, 북풍의 신의 아들 제테스와 칼라이스, 티린스의 에우리스테우스 왕의 형제인 이피토스, 펠리아스의 아들 아카스토스, 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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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고 어지러운 일방통행로 옆으로 음산하고 볼품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가득한 현대의 아르고스 시보다는 아무래도 북쪽에 있는 산악 지대에 더 시선이 오래 머문다. 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말라버린 이나코스 강을 가로질러 들판과 포도밭 너머로 북쪽 산자락 아래 나지막한 언덕에 아르고스 전역에서 가장 거룩한 성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바로 ‘황소 눈을 지닌 여신’ 헤라의 신전이 있었고, 여신의 보호 아래
아르고스 대지의 만물이 번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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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은 테세우스의 활약상 중 특히 두 가지 일화를 중요하게 여겨 파르테논 신전의 메토프 부조에 새겨놓았다. 그중 하나가 아마조네스와의 전투였다. 테세우스는 히폴리테 여왕의 허리띠를 훔치기 위해 헤라클레스와 함께 테르모돈에 갔을 때 안티오페 공주와 사랑에 빠져 히폴리토스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하지만 아마조네스는 안티오페 공주가 납치되었다고 믿고 아티카를 침공해 아크로폴리스 서쪽 바위투성이 언덕을 점령했다. 이후 이곳은 아레스의 언덕(아레오파고스)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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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나는 올리브 나무 숲을 통과하면 과거 라프리온이라 불렸던 언덕이 펼쳐진다. 이 언덕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메솔롱기 시와 남쪽으로 파트라 만이 한눈에 보이고, 그 너머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보인다. 라프리온에는 신전들의 토대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대에는 열주가 늘어선 아폴론 신전이 위풍당당하게 라프리온을 지키고 있었고, 아폴론의 누이인 아르테미스의 신전은 언덕 가장자리에 살짝 그늘에 가려진 채 수줍게 몸을 낮추고 있었다. 하지만 칼리돈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이 맡은 역할은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왜냐면 그리스 신화에서 칼리돈이라는 무대를 강렬하게 각인시킨 이가 바로 이 처녀 사냥꾼 여신이기 때문이다.
--- p.271
트로이 시와 트로아스 반도의 이름은 다르다노스의 손자 트로스에서 딴 것이며, 트로이 시의 별칭인 일리온은 트로스의 아들 일로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테베의 카드모스처럼 일로스는 얼룩무늬 소가 누워 잠드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는 신탁을 들었다. 이 소가 나지막한 아테(‘파괴적인 열정’) 언덕에 쓰러져 눕자 일로스는 그곳에 아테나 신전을 세웠다. 이 신전에는 올리브나무로 만들어진 아테나 신상을 수호신으로 모셨다. 사람들은 신상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고, 신상을 지키는 한 수호신께서도 트로이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 p.308
소크라테스는 영혼불멸설을 믿었다. 그는 선한 삶을 옹호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한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영혼은 결말에 도달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죽어감’이라 부른다. 또 어느 시점에 이르면 영혼은 환생한다. 영혼은 결코 멸하지 않는다.” … 하지만 윤회와 영혼불멸설은 신화보다는 은유와 철학의 영역에 더 어울린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기억을 온전히 유지한 채 저승에서 돌아온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주로 살아 있을 때 지하세계로 여행을 떠났던 영웅들인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디세우스다. 그리고 사람 중에는 오르페우스가 있다. 그는 정상에 눈이 덮인 올림포스 산 아래 헬리콘 강가에서 노래했는데, 이곳은 이 책에서 처음 다루었던 디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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