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나의 삶도 엇박자다. 착착 잘 맞아 돌아가는 비바체나 감미로운 삼박자 왈츠가 아닌, 엇박자로 따라가고 있다. … 그것들은 끝내 이루어낼 수 없는 인내를 가장한 신기루 같은 거였다. 운명인 듯 체념하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비바체나 왈츠 호흡을 추구할수록 상흔과 균열만 남곤 했다. 산다는 건 결코 비루하지도 그다지 고풍스럽지도 않은 엇박자, 발품을 팔면서 한 박자 늦게 철 지난 옷을 찾아다니며 고르는 것. ---「엇박자 노래」중에서
‘북쪽 바다에 곤이라는 작은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변화하여 새가 되더니 그 이름은 붕새라. 변화한 붕새의 날갯짓이 하늘을 덮고, 등허리는 몇천 리인지 가히 모르겠더라….’ 장자 내편에 나오는 변화에 대한 비유 한 토막이다. …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자신만의 세계에 울타리를 치고 이 범위를 벗어나면 긴장하여 방어태세로 들어간다. 작은 물고기 곤이가 결연히 분기하여 공기층을 뚫고 올라가는 일 따위는 우화일 뿐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도리질한다. 변화란 자신의 우주가 뒤집히는 사건이다. 고착된 사고를 변화시키는 것은 켤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사 좋사오니, 아무 문제 없사오니, 나를 두고 가시라고 평안하다 평안하다 한다. 반나체의 금발 미녀 마릴린 먼로가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 ---「변화」중에서
구름이 낮게 드리우더니 색시비가 솔솔 뿌린다.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피아노 앞에 앉아 패트릭주베의 ‘슬픈 로라(La Tristesse De Laura)’를 연주한다. 처연히 흐르는 전주부터 슬픔이 몸속을 채운다. 음악이 이렇게도 슬플 수 있다니…. 손끝을 지나다니는 선율들마다 애간장이 녹는 듯하고 악절들마다 애절함이 절절히 배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작곡가의 의도대로 음악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우울한 마음을 선율에 얹으니 음악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급기야 그리움들을 불러내 감정을 지배하고 혼을 적시더니…. 귀를 열고 마음의 눈을 떠 보시라. 잘 익은 술 항아리 앞에, 한 사람이 방랑하는 기색으로 쓸쓸히 앉아 금(琴)을 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금(琴)의 소리가 맑디맑게 하늘로 울려 퍼지는 형상이 보이지 않는가? ---「음악처럼」중에서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가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 그로 설워하노라.” 조선 후기 노계 박인로 님이 노래한 시조다. … … 육적은 유자를 품에 감추어 갖다드릴 부모님이 계셨지만, 노계에겐 글을 지을 당시 감을 품어 가도 드릴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는 서러움을 표현한 시조다. 따다 주신 조홍감을 철없이 혼자 먹던 나 역시 철들고 보니 감을 드릴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 셋방살이하며 전전긍긍하다 내 집을 마련했을 때, 나의 자가용이 생겼을 때 등, 살면서 내 안에 홍시처럼 발간 등이 켜질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났지만 이미 계시지 않았다. ---「시 같은 선물」중에서
편지가 거듭될수록 나의 지적 능력은 그와 차이가 나는 것을 느꼈지만 나무 아래에서 찍어 보낸 훤칠하고 멋진 사진을 본 뒤, 그를 잃고 싶지 않은 욕심이 생겼다. … 천지를 붉게 태우던 단풍이 낙엽으로 변하여 땅에 구르며 온몸으로 마지막 절규를 하던 그해 가을…. 드디어 그는 전역하여 사회인이 된다면서 나를 만나러 오겠노라고 했다. 순간, 가슴에서 별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꼈다. 그와 이별할 때가 다가옴을 직감하고 있었다. … 그해 초가을, 코스모스 꽃길 따라 와서 내 가슴에 머물렀던 첫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가버렸다. … 집배원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꿈같이 행복했던 젊은 날은 가을이 수없이 지나가도 아픈 추억으로 남아 금처럼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