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차림의 선사가 다 쓰러져가는 움막에 홀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어설픈 좀도둑이 움막에 기어들어와 방안을 마구 뒤졌다.
"쳇, 거렁뱅이, 도대체 집어갈 게 없군."
때마침 돌아온 선사는 허둥대는 좀도둑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거 참 안 됐구만, 먼 길을 찾아오셨는데 ......."
그는 후닥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도둑의 팔을 움켜쥐었다.
"잠깐! 내 집에 찾아오신 분을 빈손으로 보낼 순 없지. 자, 방문 기념으로 이거라도 갖고 가시게."
그는 입고 있던 후줄근한 옷을 몽땅 벗어 도둑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홀라당 벗은 채 천천히 뒷산에 올랐다. 이윽고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오려다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쯧쯧, 그 불쌍한 친구한테 저 아름다운 달도 줄 걸......."
달밤에 체조한다더니 달밤에 홀라당 발가벗고 앉아 여태 주제 파악도 못하는 꼴이라니...... 또라이가 따로 없구만,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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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스님이 지하철을 내려 길로 나왔다. 그새 큰 비가 내려 건너 편 아파트 단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사형, 저기 상가까지만 가면 건들 보살님이 차를 몰고 나와 픽업 해주실 텐데요.”
“글쎄, 그나저나 법복이 젖으면 큰일이여, 사제도 아다시피 나는 단벌인디.”
때마침 아리따운 목소리가 두 스님의 뒤통수를 간지럽혔다.
“어머나, 어떡하지? 나두 상가에 있는 손톱 발톱 미용실에 가야 되는데.”
내내 이리저리 빗방울을 피하던 사형이 빗물이 고인 데로 텀벙 발을 담갔다.
“아가씨, 제 등에 업히시지요. 소승이 모셔다 드리리다.”
입으나마나 미니스커트를 착용한 아가씨가 살살 눈웃음을 흘렸다.
“아, 아녜요. 어떻게 스님의 등에 가랑이를 턱 벌리고 업히겠어요?”
“어허, 저는 일반 사람과 다른 스님입니다. 수행은 아무나 하나요? 고스톱도 아닌데. 자, 그럼 업히시지요.”
“후훗, 고마워요.”
그때 느닷없이 사제가 끼어들었다.
“사형, 무릇 스님은 여인의 옷깃을 스쳐도 아니 되거늘.......”
“맞아, 그래서 옷을 통째로 옮겨 주려는 것이여.”
사형은 자기 등짝에 밀착된 그녀의 풍만한 돌출부분을 충분히 감지하며 도하작전을 감행했다. 어차피 님을 싣고 떠난 배, 사제는 한참 입술을 씰룩씰룩 중얼대다가 막판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밤이 깊었다.
- 어머, 오빠, 아직 안 자?
- 어어, 낮에 그 아가씨 ! 근데 이 밤중에 웬 일로 내 방까지......?”
철썩! 사제의 볼 따귀에 커다란 손바닥이 내리 덮쳤다.
“야, 어딜 만져?”
“어어, 내가 꿈을......?”
깜짝 놀라 깨어난 그를 사형이 하얗게 노려봤다.
“얼빠진 놈아! 나는 그 아가씨를 상가까지만 대리고 갔는디, 니 놈은 감히 모텔 방까지 끌고 와?”
바로 그 때, 삐리릭, 사형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떴다.
- 오빠, 나야, 후훗, 모레 거기야, 알지?
사형이 후딱 휴대폰을 덮으며 중얼댔다.
“어험, 또 스팸 메시지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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