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고破 떠나고離 싶어, 다시 수守를 찾아서
일상에서의 일탈(逸脫), 그 자유로움이 어디 꼭 사람에게만 필요하랴, 근원에로의 회귀(回歸)와 중심에서부터 떠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적 생리작용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민들레 홀씨는 자유로운 비상(飛翔)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낙엽은 한데 모여 나목을 감싸 안아 엄동(嚴冬)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리라.
우리 서예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추구하는 창조의 세계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모두들 입을 모아 법고(法古)를 통한 창신(創新)이나, 온고(溫故)의 깊이로부터 지신(知新)의 묘경(妙境)을 말하곤 한다. 이는 물론 정곡을 찌른 일침이 아닐 수 없지만, 진정 상여무상(常與無常) 곧 변함과 불변함의 입장에서 본다면 창신이나 지신의 묘경이란 것도 결국은 변화하고 있는 하나의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 이 세상 만물과 내가 영원한 것이라는 집착은 어떤 원칙이나 격식을 수(守)하는 자세를 낳고, 세상은 덧없는 변환의 연속이라는 생각은 파리(破離)를 탄생시킨 원천이 되었을 터인즉 우리 글 쓰는 사람들이 선현의 묵적(墨蹟)을 부지런히 모서(摹書)하거나 임서(臨書)하는데 정성을 들이는 것은 수(守)의 겸허한 자세이면서 동시에 파리(破離)의 정렬에 다름 아니리라.
인생과 서예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고 하겠으나 특히 인생에서 지난날을 고칠 수 없고, 한번 쓴 글씨에 다시 덧칠할 수 없는 점, 곧 그 일회성(一回性)의 상사(相似)는 우리를 무한히 숙연케 만들곤 한다. 그래서 붓을 들면 반드시 정신을 모아야 하고, 모아진 정신의 쟁기는 순백의 텃밭을 자재롭고 신채생동(神采生動)을 여는 자세여야 한다.
그렇다.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묵장(墨場)과 서전(書田)의 현장에서 얻어진 귀하고 보배로운 낙필(落筆)의 유해라니… 하지만 우리는 자칫 그 유해(遺骸)의 넓고 깊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위험 또한 적질 않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간행되는 묵장필휴는 그 집자(集字)의 미려(美麗)함이나 서체의 선택에서 초심자에게는 수(守)를 위한 버팀목의 역할을 하리라 생각되며, 전문가에게는 다양한 묵향과 심연의 묵해(墨海)를 항해함으로써 파리(破離)의 즐거움으로부터 불유구(不踰矩)한 대도의 세계를 한껏 선사하리라 사료된다.
묵장필휴는 그간 여러 유사한 이름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이나 중국에서 간행된 내력 있는 문방사우의 다정한 동반자이거니와 이제 새롭게 선보인 본서가 서예가에게는 무한히 전개될 해방 공간을 제공함은 물론 현대인의 심신(心身) 수양과 교양을 쌓는데도 큰 몫을 하리라 기대하면서 추천의 말에 대신한다.
학정 이돈흥(한국미협 수석 부이사장)
서예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독서
묵장필휴의 편집본을 받아들고서 이런 책이 국내에서 번역되어 나온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서예인의 한사람으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은 서예인들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당초에는 없는 상세함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世事波上舟(세사파상주)
沿?安得住(연회안득주)
당(唐) 위응물(韋應物)의 한시이다. 일반인을 위하여 한시 옆에 한글로 명기를 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일은 파도 위의 배와 같은데, 거슬러 가며 어찌 안주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해석이 달려 있다. 해석은 혼선을 막기 위해 대부분 직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 얹어 작가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곁들이고 있다. 일반인들이 당나라의 위응물韋應物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어찌 알겠는가. “당나라 경조(京兆) 만년(萬年) 사람. 소주자사(蘇州刺史) 등을 지냄. 세칭 위소주(韋蘇州)라고 불림. 고황(顧?) ? 유장경(劉長卿) 등과 수창하였고, 산수시에 뛰어나서 왕유(王維) ? 맹호연(孟浩然) ?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왕맹위류(王孟韋柳)’라고 불림”이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이런 과정으로 꼼꼼하게 편집하여 번역과 편집에만 4년여가 넘게 걸렸다고 한다.
글씨의 집자(集子)도 다른 곳에서 각기 옮겨왔음에도 부드럽게 연결되어 마치 이 글을 당초에 쓴 것처럼 편집이 되어 있다. 워낙 주옥같은 글들이 집대성 되어 있으니 국문학 전공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애장본으로 간직하면서 가까이 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여기 추천의 글을 적는다.
강호제현(江湖諸賢)께서 사랑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이 책의 출간으로 한국 서예계가 한층 크게 발전해갈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일도 박영진(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서예학과 교수, 국제서법연맹 공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