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체의 기능이 떨어지니 머리로 내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 그야말로 공부만이 나의 살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순전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나의 단 한 가지 재능까지도 원천봉쇄하려는 사회와 싸워 이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겼다! 이렇게 말하니 사뭇 전투적이고 비장하게 들리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그 싸움을 나름대로 즐긴 것 같다. 내가 공부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 공부처럼 하기 쉬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 무슨 일이든 가령, 더운 여름날 밭에 나가 땅을 파든, 교통지옥을 뚫고 휴가지에서 놀든 도서관이나 서재에서 한가로이 책 읽는 일 만큼 쉬운 일이 또 있을까.
--- p.20
“어느 날, 직장의 경험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모든 부조리가 칙칙한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나는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앎이 삶을 올바르게 해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렇게 공부는 지속되는데 뭔가 허전했다. 공부의 넓이에 비해 깊이가 모자랐던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게 공허해지려는 순간 철학이 내게로 다가왔다.
--- p.213
“2학년 겨울방학 때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학교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그리스어로 읽기 시작했다. 첫날에는 하루 종일 50줄밖에 읽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호메로스 사전이 있는 줄도 몰라 옥스퍼드 희영사전을 뒤져가며 동사와 명사의 원형을 찾아 노트에 옮기는 고된 작업을 했다. 내게는 자나 깨나 호메로스뿐이었다.(…) 내게는 어떤 여행도 독서를 통한 지적 탐험만큼 즐겁지 않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라도 책 속의 깊은 사상과 맛있는 표현을 곱씹어보는 것만큼 감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 p.222, 226
“절집에서 ‘공부는 왜 하는가?’ 묻는 것은 우문이다. 절집은 공부가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니 공부 말고 다른 할 일도 없다. 스승과 제자 그리고 도반(道伴)들 사이에서 항상 주고받는 안부는 “요즘 공부가 어떠하신가?”이다. 더구나 절집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스승과 제자, 도반만이 있을 뿐 다른 인연은 없다. 저 산에 서 있는 바위도, 흘러가는 구름도 모두 함께 성불해야 할 도반들인 것이다. 그러니 공부밖에 다른 할 일이 없고, ‘공부가 순조롭다’ 함이 가장 떳떳하고 기꺼운 선물이다.”
--- 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