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심이 순식간에 소녀를 지배했다. 달아나려고 했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밝아오는 불빛 가운데 웅크리고 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어둠이 주는 공포보다 백배는 거대한, 빛의 공포였다. 잘못했어요. 별이가 잘못했어요. 소녀는 자신이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 몰래 집을 나섰기 때문에 벌을 받는 거라고. --- p.11
10시 27분, 구와마을로 향하는 지름길인 농로를 이동 중이었고, 그러다 10시 39분부터 11시 정각까지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마을어귀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논이나 밭 주변 같았다. 중요한 건 별이가 그 21분 동안 한자리에 머물렀다는 사실이었다. 이 21분이 의미하는 건 무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뺑소니였다. 그러나 뺑소니가 논밭 가운데서 일어날 수는 없었다. --- p.55
그 사건의 정확한 진실을 아는 건 희령이 아는 한 세 사람에 불과했다. 전장로와 범인이었던 황상태 그리고 희령 자신. 남편이 알게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바로 그 사건이었다. 이제 서형사가 들은 이상 남편도 대강은 알게 될지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남편이 그 일을 들쑤시고 다닐 가능성이 다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