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국시대인 B.C. 3~4세기에는 독창적인 사상가가 속출하였다. 장주(莊周)가 그 중에서도 걸출한 사상가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의 전기(傳記)는 유감스럽게도 명확하지 않다. 장자는 몽(蒙)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周는 일찍이 칠원(漆園)의 관리가 되었다. 양(梁)나라의 혜왕(惠王), 제(齊)나라의 선왕(宣王)과 시대를 같이한다. 그의 학문은 막히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주장의 근본은 노자의 말에 귀착한다. 때문에 그가 남긴 십여만 자의 글은 대체로 우언(寓言)이다. 어부·도척·거협(漁父·盜?·??)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비난하고 노자의 학설을 밝혔다. 외루허·항상자(畏累虛·亢桑子) 등은 모두 가공의 이야기로 사실무근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문장이 매우 훌륭하고, 구체적인 예로써 추상적 도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그로써 유·묵(儒·墨)의 허위를 파헤쳤다. 당시의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그의 설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의 설은 바다처럼 넓고 자유분방했다. 장주는 인간의 지각(知覺)을 배척했다. 인간의 지각이야말로 개인에게 번뇌를 가져다주는 몹쓸 것이며, 세상의 온갖 분쟁과 환난을 일으키는 근본이라고 보았다. 태고의 순박한 세상을 이상향으로 여긴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사상은 한편으로 보면‘현실 도피’의 경향이 농후하다. 현대의 우리들이 ≪장자(莊子)≫를 읽어 보면 그의 사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복잡하게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초월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점도 현대의 우리들로 하여금 장주의 사상에 빠져들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