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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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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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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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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1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3.9만자, 약 3.7만 단어, A4 약 87쪽?
ISBN13 9791195739530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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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지온군의 모델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의 나치 독일군이라고들 한다. 헬멧과 군복의 디자인이 비슷하고, 이제까지의 병기를 구닥다리로 보이게 만드는 신병기에 의한 전격전(電擊戰)을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롭고 기묘한 기술을 잇달아 전선에 투입하며 경악시키는 부분도 꼭 닮았다. 미국, 영국, 소련(현 러시아 연방) 등의 ‘연합군’을 떠올리게 하는 ‘연방’과 대치하는, 나치 독일군의 모습을 한 적으로서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구축하는데 일조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사상도 독일과 지온은 비슷하다. 총수인 기렌 자비가 “선택된 우량종인 우리 지온 국민”이라며 나치의 우생 사상(우수한 인종은 보호하고 열등한 인종은 박멸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연설을 하고, 그의 아버지인 데긴 자비가 “귀공은 히틀러의 꼬리다”라며 빈정거리는 등, 실제 작중에서도 그러한 점을 암시하는 표현의 예가 적지 않다.
_나치와 닮았기 때문에 리얼?

건담의 이야기는 사람이 우주에서 살게 된 배경에 대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자진해서 지구를 떠난 것이 아니다. 지구 주위에 건조된 거대한 인공도시 스페이스콜로니에, 마치 이전 세기의 식민지(colony)처럼 본인들의 희망 유무와 관계없이 이민‘당한’ 것이다.
당초의 콜로니 이민 계획은 지구 환경의 파괴나 인구증가에 의한 한계를 타개할 수단으로서 환영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르고, 인류의 태반이 이주한 후에도 연방정부의 고위관료들은 여전히 지구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우주로 이주당한 ‘스페이스노이드’라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들 특권계급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점차 쌓여갔고, 지구와 스페이스콜로니 사이의 알력은 나날이 심해졌다.
형태를 띠지 못하던 술렁임에 ‘사상’이라는 그릇을 마련하고 방향성을 부여한 것이 ‘지온 줌 다이쿤’이라는 인물이다. 우주도시 중 하나인 사이드3에 나타난 그는 “스페이스노이드 안에서 신인류인 ‘뉴타입’이 나온다”라고 설파하며, 인류의 가능성은 우주에서 개화(開花)한다는 자설(自說)을 바탕으로 스페이스노이드의 자치권 획득을 제창해 절대적인 지지를 모았다. 지구에서 가장 먼 콜로니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었던 사이드3는, 그의 카리스마성을 기반으로 지온공화국(共和國)을 자칭하며 독립을 선언, 다이쿤이 총리가 되며 우주도시로서는 사상 최초로 민주제를 실현시킨다.
그 후, 다이쿤의 의문에 찬 죽음 후(모살설이 유력하지만 극 중에서 사실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를 배후에서 떠받치고 있던 부총리 ‘데긴 자비’가 실권을 잡는다. 데긴은 공화제를 전복, 지온공국(公國)을 건국하고 독재제를 시행한다.
_두 공화국, 바이마르와 지온

한편으로는 ‘지온 국민에 의한 인류의 관리’를 호언장담하고, 한편으로는 ‘스페이스노이드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이 ‘강자의 논리’와 유린당해온 ‘약자의 논리’를 동시에 주창하는 프로파간다는, 모순된 두 주장 사이에서 파열할 뿐이다.
그렇지만 지온은 어느 하나도 철회할 수 없었다. 지온에 의한 전 인류의 지배를 주장한 ‘강자의 논리’는 지온 군인들의 애국심을 부추기고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해 뺄 수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온공국에 속하지 않은 스페이스노이드, 즉 우주로 이주당한 사람들에게 호소하려 했을까?
우선 지온에 독재제가 시행되기 이전, 자주 독립을 바라는 스페이스콜로니의 선구가 되려 했던 ‘공화국’ 시절의 이상을 흔적이나마 남겨서,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의 대의명분으로 삼아 ‘침략’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던 목적이 하나. 다른 하나는 에너지나 광물자원 등 풍족한 자원을 가진 연방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온의 빈약한 국력 때문에, 전쟁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지 않고는 해쳐 나갈 수 없는 재정 형편 때문이다.
이렇게 야심과 이상이 뒤섞인 주장이 국민과 주변 국가의 자원을 끌어내는 수단이 되고, 전쟁을 수행하는 추진력이 되는 것을 일본인은 과거에 직접 겪었다. 바로 대동아공영권??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구미(歐美) 각 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아시아 나라들을 해방시키고, 일본을 맹주로 하는 국제 질서를 건설하자’라는 슬로건이다.
_스페이스노이드의 해방과 대동아공영권

‘가지지 못한 나라’인 일본이 ‘가진 나라’와 대등해지려 한 이기적인 욕망과, 아시아를 대표해 인종차별을 철폐하려 했던 이타적인 행동. 이 둘이 고노에의 ‘아시아의 맹주인 일본’이라는 아이디어 안에 융합되고, 이윽고 ‘동아 신질서’라는 형태의 발상이 된다.
'건담'의 지온공국 역시 지구의 풍부한 자원을 연방정부에 독점당한 ‘가지지 못한 나라’임과 동시에, 우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향한 차별을 중지시킨다는 대의명분하에 전쟁의 불길을 확산시킨다. 물론 일본과 지온 둘 다 ‘차별 받는 사람들’로부터 요청 받은 적이 없는데도 ‘멋대로’ 아시아와 스페이스노이드의 ‘대표’라 칭하며 ‘일방적인 선의’를 ‘강요’했다.
_선의의 강요와 폭주

의논이나 투표도 거치지 않았으면서 자신들이 리더라 칭하는 건 ‘공통의 적’을 직면한 긴급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적’끼리 한 패가 되어 평화와 자유를 위협하니, 우리도 힘을 하나로 모아야만 한다??‘스페이스노이드의 해방’과 예전의 일본이 창도한 ‘대동아공영권’(내지는 ‘동아 신질서’)의 슬로건은, 이딴 제멋대로인 논리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지구에 계속 머무르는 사람들의 횡포를 허락한 ‘지구연방’에 반기를 든 지온공국……. 서구 열강에게만 이익인 현재 상태를 고수하는 ‘국제연맹’(윌슨의 14개조에 근거해 설립된 국제기구. UN의 전신격)에서 탈퇴하고 전쟁으로 내달린 일본……. 시대와 지리 모두 동떨어진 두 나라가 ‘공통의 적’이 구축한 국제질서를 적대시하고 무너뜨리려 한 전말이 동일하다. 자유와 독립을 수호해야 마땅할 사람들이 타인의 자유를 침탈한다는 이 파탄된 논리는, 그 기저에 흐르는 ‘일본인적인 사고방식’을 지온 사람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_지온 국민과 일본인의 멘탈리티

우주에 사는 사람들의 자주 독립을 주창한 지온도 초기에는 ‘지구연방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자치’라는 온건한 희망을 호소했다. 하지만 지구연방이 제안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과격화, 무력에 호소하게 된다. ‘아시아주의’ 역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자아 찾기’를 계속하며 떠돌다 간신히 도달한 지점이다.
모든 것은 ‘서구 열강’??서양문명의 대척점으로서의 ‘아시아’라는, 국경을 초월해 확장된 문명을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을 둘러싸고 있는 아시아 공동체’라는 발상은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라는 말로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가 썼다고 알려진 ‘탈아론’(1885년)이 시초일 것이다. 다만 탈아(脫亞) = 아(아시아)로부터의 ‘탈’출. 즉, 일본은 서양문명을 받아들여 ‘아시아로부터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는 말처럼, 아시아적인 가치관은 부정되었다.(중략)
그러나 그 길은 외톨이의 괴로운 도정이었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밀접한 아시아에서 떨어져 나와, 구미에게 뒤처진 근대화의 길을 달리려 하니, 일본은 어느 쪽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미아나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이윽고 아시아로 ‘회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또한 피하기 어렵게 된다.
_고독한 ‘탈아’의 길

지금까지의 일반론, 지온공국은 (제복의 디자인 등을 볼 때) 전쟁 전의 나치 독일의 모방이라는 견해로 보면 그와 대립한 나라들 = 영국, 미국을 연방에 대입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자원을 가진 나라에 대한 가지지 못한 나라의 이의제기’라는 성질을 띤 지온의 정신성은 나치 독일보다는 전쟁 전의 일본에 가깝다는 걸 앞에서 논했다.
그렇게 라이벌의 위치를 다시 파악하면, 연방이라는 존재에 대한 해석도 자연히 바뀌게 된다. ‘가지지 못한 나라’였던 전쟁 전의 일본과 지온이 비슷하다면, 첫 전투에서 심각할 수준의 타격을 입고 중요 자원의 거점을 꽤나 잃었지만 지온의 30배나 되는 국력과 건담이라는 신병기를 축으로 반격에 성공한 연방은, 폐허에서 일어나 경제성장을 거친 끝에 ‘가진 나라’가 된, 전쟁 후의 일본을 투영한 게 아닐까.
_연방군과 전후 일본에 공통된 ‘어둠’

후대의 만화나 게임에서 그의 보신을 향한 집착을 두고 ‘자브로의 두더지’라고 조롱하는데, 뇌라고도 할 수 있는 군의 최고위층 인사를 잃으면 그 순간 승패가 결정되어 버리니, 그를 겁쟁이라 부르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 노라드, 구 일본군이 본토 결전을 대비해 건설했던 마츠시로 대본영도 지하에 있다).
그러나 총탄이 날아다니는 최전선에서 부하, 병사들과 언제나 운명을 함께하려 한 레빌 장군(지온의 비밀병기 솔라 레이의 일격으로 결국 전사한다)과 비교하면 역시 일반병들의 사정을 대하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병사나 파일럿 등의 부하를 하나의 장기말이나 ‘미끼’로 생각하며 움직이는 냉철함은 분명 행정이든 군사든 ‘목표’ 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고, 고프의 느긋해 보이는 외모에서 연상되는 정실인사와는 정반대다. 그렇다고는 해도 병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전쟁이라는 고통이 수반되는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연방시민의 일원이기도 하다. 안심하고 사지(死地)로 가게 한다??그런 모순되고 듣기에만 좋은 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성이 결핍되면, 국가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_위험한 수완가 고프 대장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고프의 오만함은 일본의 관료제와 많은 점에서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식량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상대로 남미 이민을 모집, 현지 사정을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는 채 경작지도 없는 정글 오지나 황무지로 보내 버린 외무성, 최근의 사례라면 아직도 혼란이 수습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 국민연금과는 별개로 자신들 공무원의 공제연금은 기록 누락이 없게끔 관리하고 있던 사회보험청 등, 국민의 복리는 당장만 모면할 수 있으면 되고 ‘국가의 두뇌’인 자신들의 보신을 우선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이 표출된 사례는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가진 나라’에 대한 ‘가지지 못한 나라’의 자살행위와도 같은 이의제기……. ‘가진 나라’의 운영을 맡아 막대한 부를 제멋대로 주무르는 관료제의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사치…….
이 이야기의 기조가 되는 1년전쟁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와 닿았던 것은 ‘가지지 못한’ 지온군 속에서 전쟁 전의 궁핍한 일본을 느끼고, 풍요로운 연방군이 문득문득 보이는 끔찍한 옆얼굴에서 전후 일본의 자취도 느끼고, 두 입장을 오가며 양측 모두에게 공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_1년전쟁은 ‘전쟁 전의 일본’ VS ‘전쟁 후의 일본’

다채롭고 입체적인 등장인물들이 자아내는 군상극이기에 한마디로 정리해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건담 월드’의 매력이다. 그러나 ‘전쟁’과 그것을 배후에서 지탱하고 있는 모빌슈트 등 기계학에 한정해서 본다면 ‘양산’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투쟁이 건담의 테마라 할 수 있다.
_주역은 건담이 아니라 양산기인 자쿠?

건담의 전략적인 가치 역시 사실은 ‘양산’에 있었다. 모빌슈트 1기가 아무리 분투하며 활약한다고 해도 국지적인 승리에 불과하고, 불리한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다. 이 특별한 기체의 ‘본체’라고 해야 할 부분은 자쿠의 파이프를 잡아당겨서 뜯어 버리는 강한 완력도,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상회할 정도의 점프력도 아니다. 그 두뇌인 ‘교육형 컴퓨터’야말로 본체라고 할 수 있다.
건담이 대지에 선지 얼마 되지 않아 조종이 미숙했던 아무로 따위가 역전의 용사인 샤아와 어떻게든 겨룰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의 성능이 좋았던 덕이다(라고 아무로는 겸손하게 말한다). 그것은 교육형 컴퓨터, 즉 전투의 케이스 스터디를 기억하고, 전투를 하면 할수록 싸우는 방법을 배우며 보다 영리해진다. 혹독한 실전을 경험하며 아무로가 연방군 본부 자브로로 가지고 간 바로 그 전투 데이터가 지온의 ‘양산’에 당했던 연방군에게 반격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온의 양산 기체인 자쿠에 대항해 연방군은 건담의 양산 타입인 ‘짐’을 개발한다. 이 기체에 아무로의 전투 데이터를 이식하면 미숙한 파일럿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수준으로 수족처럼 짐을 부릴 수 있게 된다. 건담은 그들 형제기의 성능 향상을 위한 선행형 테스트기이며, 보다 높은 수준으로 ‘양산’ 시스템을 가동시키기 위한 마지막 톱니바퀴라고 할 수 있다.
_양산기의 테스트 기체에 지나지 않았던 건담

개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순간부터 종전까지 싸움의 귀추를 쥐고 있던 양산기가 자쿠와 짐이라면, 구 일본군의 경우는 1만기 이상 만들어진 명기 제로센이 그렇다. 스펙상 일기당천의 힘을 지닌 과학력의 괴물이라는 측면에서는 (실제로 거둔 전과에서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건담의 짝으로 전함 야마토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온갖 항공모함에 실려 함재기로서 남쪽 바다까지 편대비행을 한 ‘수(數)’의 제로센에는 ‘양산’이라는 설계 사상??부품의 표준화나 효율 좋은 생산성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반면 동형 함이 무사시 단 1척 밖에 건조되지 않았던 ‘특별’한 전함이었던 야마토에 ‘양산’의 근간과도 같은 품질관리와 공정관리라는 시스템이 초기부터 도입되었다. 이 ‘기술의 엇갈림’이라 해야 마땅할 비극이 후에 ‘기술입국(立國) 일본’의 포석이 된 전모를 이번 장에서 순서대로 더듬어 갈 것이다.
_자쿠 = 제로센, 건담 = 전함 야마토라고?

그러나 ‘1그램도 소홀히 다루지 않’을 정도로 파고들었던 창의적인 고안은 숙련된 기술자들이 연일 계속되는 철야도 마다하지 않고 만들어낸 노동의 결과물이었다. 자원이 부족하고 공업력도 서양에 뒤처지는 ‘가지지 못한 나라’였던 일본은, 피아의 차이를 가장 저렴한 자원인 ‘인력’으로 메우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집약형 방법론과 ‘하면 된다’는 정신주의가 뒤섞인 생산법은 현대전에 필요한 ‘양산’??일정한 기준을 통과한 균등한 품질의 병기를 대량으로 전장에 공급할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했음이, 일본을 둘러싼 전선이 점점 더 혼탁해짐에 따라 명확해진다.
_맞지만 않으면 격추당할 일도 없다?

그러나 제로센에는 그러한 ‘양산’의 기술도 없거니와 애초부터 양산하려는 발상이 전혀 없었다. 제로센을 1그램이라도 가볍게, 조금이라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용된 가공 기술은 요즘으로 치면 숙련된 엔지니어가 F1 레이싱카 한 대에 달라붙어 성능을 높이기 위해 매진하는 ‘튜닝’에 극히 가깝다.
예를 들어 주 날개, 동체 등의 외판을 이어 맞추는 부품에 일반적인 리벳(rivet)을 쓰면 표면이 울퉁불퉁해져서 공기 저항이 늘어나기 때문에 머리 부분이 평평하고 튀어나오지 않는 ‘접시대갈못’이 채용되었다. 그리고 경량화를 목적으로 앞에서도 언급한 살 빼기 구멍이 기체 곳곳에 뚫렸다. 하지만 이 구멍을 현장에서는 ‘바보 구멍’이라고 자조를 담아 부르던 일화가 지적하는 것처럼, 사람이 하나씩 수작업으로 뚫을 수밖에 없었고, 효율도 매우 나빴다. 외판과 일체화되도록 두드릴 필요가 있는 접시대갈못도 시간과 수고가 드는 사정은 엇비슷했다.(중략)
제로센의 아버지인 호리코시 지로도 공저 《제로센》에 라이벌기라고도 할 수 있는 미 공군의 명기 P-51 머스탱과의 생산공수(生産工數, 일손 × 시간)를 비교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그 계산에 따르면 제로센은 1기에 10000명시, 머스탱은 불과 2700명시였다. 간단하게 말해 제로센은 약 3.7배의 일손이 더 든 것이다(더구나 당시 일본의 인구는 미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미국의 물량에 졌다’는 이야기는 뻔뻔한 변명일 뿐이다. 일본은 자신의 ‘양산’ 체제 미비에 발이 걸려 자멸한 것이다.
중국전선 등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의 화려한 전과에 눈이 먼 일본군은 장인이 만든 ‘공예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미완성품을 그대로 ‘양산’해 버린 것이고, 미완성인 ‘양산’이 보다 완성된 ‘양산’에게 패하는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_일본의 ‘축소 지향’과 제로센

그리고 초반의 최강 병기가 이후에는 범작이 되어 버리는 ‘실패한 양산 병기’라는 문맥에서 제로센과 자쿠의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제로센은 ‘개조(改造)는 있어도 개량(改良)은 없었다’라고 평가되는 기체다. 전황에 맞춰서 또는 파일럿의 요청에 따라 무장이나 장갑을 강화하는 등 ‘잔재주’ 수준의 개조는 몇 번이나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속도나 선회 성능 등 어딘가 다른 부분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결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면피’ 수준의 개조로 때우는 게 고작이었고, 기본적인 성능이 향상되는 ‘개량’은 없는 채였다.
_‘개선’은 있어도 ‘개량’은 없었던 비극의 기체

그러나 현실의 일본군과 제로센은 전혀 다른 길로 갔다. 전문 교육을 받은 몇 안 되는 일류 기술자들을 쓸데없이 164개나 되는 기종과 파생형으로 분산시켜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 모두 어중간한 성능에 그쳐 제식 채용에는 이르지 못했고, 제로센을 조금씩 개조해가며 간신히 버틸 뿐, ‘근본적인 설계 재검토’라는 긴급 과제는 계속 뒤로 밀렸다. 무턱대고 신형기의 베리에이션을 늘리는 바람에 주력 기종(제로센 또는 자쿠)을 개량해서 성능을 끌어올리는 노력에는 소홀해졌던 것이다. 하나에 매진하지 않고 이 기종 저 기종에 손대면서 전선을 지탱할 수 없게 만든 ‘바람기’에서도 전쟁 중의 일본과 지온이 서로 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수준의 유사성이 보인다.
_‘인재’라는 생각이 없었던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양산’

전쟁 전의 일본은 그러한 기술 교류가 국제관계 악화와 함께 유럽?미국과 끊어졌고,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과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자력으로 신병기 개발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제로센이 부딪친 ‘양산’의 한계는 일본의 외교가 실패한 결과이며, 외부를 향해 닫혀 있던 태도의 인과이기도 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동포 ‘스페이스노이드’들에게 협력을 호소했지만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지온의 패잔한 모습이나, 자사 독자 규격인 ‘에이트랙’(ATRAC, ‘MP3’ 포맷에 대항했던 음악 압축 기술) ‘베타맥스’(βmax, 가정용 비디오 시장에서 VHS에게 패함)에 집착하다 실패한 소니를 떠올리게 만든다.
_국제 교류 속에서 진화하는 기술

거함거포주의란, 해상에서의 전투는 전함끼리 화려한 포격을 주고받는 함대 결전으로 승패가 정해지니, 보다 거대하고 포격에도 강한 장갑을 달고, 적함보다 조금이라도 주포가 큰(= 공격력이 센) 전함을 보유한 나라가 승자다, 라는 ‘거함’ + ‘거포’가 최고라는 발상이다.
미국의 12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가 ‘세계 최대의 전함’을 갖겠다고 하는 것은 어이없게 보이지만, 정작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는 본인은 매우 진지하다. 속속 다가오는 적의 함선을 단 한 척으로 모조리 격침, 이쪽은 상처 하나 입지 않으니 좋지 아니한가, 역시 ‘양’보다 ‘질’이야, 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은 전쟁 전의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위를 모두 적으로 돌려 사면초가가 된 나라는 양보다 질의 ‘무적 병기’에 매달리기 쉽다. 나치 독일의 예를 봐도 히틀러가 직접 지령을 내려 만든 188톤의 초중전차 마우스(육상 자위대의 주력 기종인 90식 전차 = 약 50톤의 4배 가량), 거대하기 때문에 레일의 부설이나 주포의 조립에 몇 주씩이나 걸리는 800mm 열차포 등이 존재한다. 아득한 미래에, 빔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몸뚱이와 귀신같은 전투력으로 우주요새 솔로몬을 포위한 연방군을 순식간에 쫓아 버린 거대 모빌아머 ‘빅 잠’에 지온 사람들이 건 기대 또한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체 길이 263미터, 배수량(전함의 크기를 측정하는 기준) 7만 2000톤, 사상 최대인 460mm 주포를 갖춘 거대 전함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건 무책임하게 마음속에 꿈을 품는 ‘소원’도, 한 사람의 분발로 어떻게든 되는 ‘장인의 뛰어난 기술’도 아니다. 어마어마한 물량을 그저 한결같이 컨트롤해야만 하는 ‘생산관리’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_양보다 질, 전함 야마토와 빅 잠의 공통점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한정 ‘최고의 전투기’라 불리는 제로센을 만들어낸 일본이지만, 부품 하나하나를 만드는 기술력에 있어서는 세계 수준과 비교했을 때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제로센의 ‘엔진’이 4년간의 전쟁 동안 연합국의 기술 혁신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근본까지 올라가보면 나카지마비행기가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던 P&W사(미국의 항공기용 엔진 메이커) 엔진의 ‘카피판’이라는 건 지나친 말일지 몰라도 ‘영향’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전함 야마토의 함수에 장착되어 있는 둥근 돌기(물결의 저항을 줄여 연비를 개선하는 기술로 ‘구상 선수(Bulbous bow)’라고 불린다) 역시 독일을 방문한 해군 소속 기술자가 현지의 배를 흉내 낸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일본의 기술자는 기존 제품을 약간 개량해 성능을 높이는 응용력은 뛰어났을지 몰라도, 과학이나 군사 상식을 확 뒤집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개발력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세계 최대의 전함’을 목표로 하는 것은, 지온공국으로 치면 막대한 에너지를 모빌슈트에 공급하는 ‘핵융합로’나 레이더를 방해해서 연방의 전함에 은밀하게 접근하는 것을 돕는 ‘미노프스키 입자’ 같은 혁명적인 기술 없이 자쿠를 만들어내라고 주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짓이다.
엔진이나 제철 등 배를 구성하는 소재 측면의 ‘요소 기술’에서 드라마틱한 진화를 바랄 게 못 되고, 이미 있는 파츠를 잘 변통해서 만들 수밖에 없다면 ‘조립 방식’을 바꾸는 것 외에 ‘세계 최대 최강’에 도달할 길은 없다.(중략)
전함 야마토는 ‘단 하나뿐’이지만 그 거대한 선체를 구성하는 철판이나 나사 등의 부품, 포탑과 통신 장비가 어마어마한 양으로 소요되기 때문에, 사실은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으로 조달하는 ‘양산’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비참한 전화를 면했기에 현대전의 무서운 현실을 몰랐던 일본 군부, ‘평화 치매’(‘큰 전쟁’이었던 러일전쟁도 30년 이상 지난 옛 기억이 되어 버린)에 걸린 일본 군부가 ‘최대 최강의 전함’을 꿈꾸었고, 비합리의 덩어리 같은 그 동기가 합리성의 극치인 ‘생산관리’를 향한 의식 개혁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기묘한 뒤틀림이 일어난 것이다.
_‘최대 최강’의 꿈이 불러낸 생산관리

당시 일본의 공업은 ‘같은 부품’을 규격대로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 부품의 제조는 인건비가 싸고 제작 기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민간 공장에 맡겼었기 때문에 회사마다 사이즈도 제각각이고, 같은 공장 안에서도 이 총의 부품을 빼서 저 총에 넣는다, 같은 유용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총이든 베테랑 직공이 한 정씩 조정한 ‘수제품’이나 다름없었고,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일본이 계속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터무니없는 조건의 일도 어떻게든 해 버리는 ‘명장(名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재능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임시방편이 계속되면, 불합리한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기 힘들다. 일본인의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비상한 손재주가 왜곡된 ‘상식’의 수호자가 되어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_‘명장’이 방해가 된 부품 규격화

간신히 첫 전투에서 올린 자랑스러운 전과가 ‘제로센’의 이름과 함께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졌을 즈음에는 전쟁도 말기에 가까워지면서, 한때의 명기도 눈부시게 진화하는 연합군의 적기에게 통하지 않게 되고, 일회용 특공기 외에는 활약할 장소도 사라진 애처로운 신세가 된다. 지켜야 할 국민을 국가가 국가총동원법의 이름 아래 전쟁터로 내몰고, 인적·물적 자원을 모조리 쥐어짠 일본의 전쟁은 ‘백발일중의 적 포 백문보다 백발백중의 우리 포 일문’(사치스럽고 해이한 미군의 포격은 백발 중 하나 밖에 맞지 않는다)이라며 적을 무시하던 달콤한 정신주의의 박살과 함께, 8월 15일의 패전을 맞이하게 된다.
_전쟁이 요구한 영웅과 명기

“인류가 과도하게 불어난 인구를 우주로 이민시키게 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지구 주위의 거대한 인공 도시는 인류 제2의 고향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일생을 보냈다.”
이 '기동전사 건담' 서두의 내레이션은 ‘이민시키는 측’의 힘을 상징하는 연방군과 ‘이민당하는 측’의 반발이라고 할 수 있는 지온군의 대립을 몇 안 되는 어구로 정리한 유명한 문장이다.
하지만 이 내레이션은 건담의 세계 = 우주세기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는 결코 맞닿아 있지 않음을, 즉 이 세계의 미래에 건담이 대지에 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건담이라는 이야기의 대전제인 ‘거대한 우주도시’, 즉 스페이스콜로니는 일찍이 활발하게 논의되기는 했지만, 이제는 폐기된 안건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_스페이스콜로니와 우주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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