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숲 사이로 깊이 들어서서 그들은 바닥에 나란히 주저않았다. 두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레 어스름 속에 섞여들었고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와 나무가 풍기는 특유의 향이 주위를 감돌았다.
잠시 후 팔에 완장을 두른 궁궐 관리인이 경춘전 마당을 가볍게 훑어보며 지나갔다. 관리인이 사라진 뒤에도 그들은 사위에 어둠이 깔릴 때까지 숲 속에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조심스레 숲 밖으로 나왔을 때, 고궁은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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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 p.206
“함께 있고 싶었죠. 당신이 웃으면 행복했고… 냉정하게 굴거나 다른 사람 때문에 아파하면 힘들었죠. 당신 가까이 있는 한, 두 가지 감정을 안고갈 수밖에 없다면… 난, 그저 그런 나날이라도 좋으니 한결같이 평온하게 지내고 싶어요. …좋은 사랑 할 거예요. 사랑해서 슬프고, 사랑해서 아파죽을 것 같은 거 말고… 즐거운 사랑 할 거예요. 처음부터 애초에 나만을 봐주는 그런 사랑이요.”--- p.326
"나 사랑하는 게 정말 힘들면… 사랑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한테 아무 위로도 못 됐다는 거 아니까. 하지만 도망가지만 말아요, 내 인생에서.” --- p.377
당신 말이 맞아. 나,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니고… 내가 한 여자의 쓸쓸함을 모조리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아. 내가 옆에 있어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을 거야. 사는 데 사랑이 전부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 p.398
“당신하고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많이 슬프고 쓸쓸하겠지만 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사랑은 지나가는 봄볕인 거고. 세상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힘든 고통이니까 난 사절하고 싶거든요. 근데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가면서도 당신 만나면 금세 흔들리고, 잘 안 되고 말아요.”--- p.405
사랑도, 사람 마음도 이렇게 낱낱이 뒤적여 가며 볼 수 있다면 좋겠지. 볕을 모아 불씨를 만드는 돋보기처럼, 좋아하는 이의 마음에 누구나 쉽게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좋겠지. 사랑 때문에 괴로운 일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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