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한국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연구자들이 가지는 고충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무엇보다 옛사람들의 정서를 쉽게 공감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게다가 그 옛사람이 ‘여성’이라면 난감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우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텍스트를 만나기가 어렵다. 얼마 안 되는 텍스트마저도 지식인 남성이라는 필터에 걸러져서 여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문자 권력을 쥔 지식인-남성의 시선을 거쳐 텍스트 표면에 부상한 여성들은 가부장 체제에 잘 적응해서 칭송받는 현모양처이거나, 아니면 이데올로기를 거스른 악녀, 혹은 음담패설의 대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여성의 일상을 조명해보려는 시도는 꾸준히 지속되었다. 이들은 ‘잘 보이지 않았던’ 여성들의 일상을 복원하고, 남성 못지않은 뛰어난 역량과 지혜, 고고한 인품, 억척스럽게 삶을 꾸려나갔던 강인함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더 나아가 소소한 몸짓에서도 저항과 주체성의 의미를 부각시키거나, 『장화홍련전』의 ‘못된 계모’를 만들어낸 담론적 역학까지 세세하게 분석해내기도 했다.
우리들의 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 눈에는 아름답고 지혜롭고 현명한 여성이 아니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하거나, 욕망에 일그러지고 상처로 가득한 여자들이 자주 보였다. 이순지의 딸과 사방지의 관계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이 보기에도 기괴한 구석이 있었다. 강간당한 후 미쳐버린 여자는 어떻게 구제하면 좋을까? 상부살이 끼었는지 개가를 세 번이나 한 여자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눈을 부라리는 귀신 앞에서도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며 태연자약하게 대꾸하는 황당한 어머니는? 그 기묘하고 일그러진 표정마저 ‘여성 주체성’을 위해서라면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지표임은 분명하다. ---「머리말: 마음을 포개다」중에서
남의 눈과 입을 빌려서 가까스로 등장한, 그것도 기묘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여성들을 포착하기 위해서 여성의 욕망, 그 마음자리부터 샅샅이 해부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한다. 어떤 생각에서, 무슨 마음으로 이런 행동을 했나. 우선 여성 내면에 있는 독하고 집요한 욕망의 실체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여성을 관통하는 수많은 권력의 그물망을 찬찬히 헤집어봐야 한다. 여성은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식을 죽이기도 하고, 자식 대신 죽기도 한다. 모성이 존재하기는 한 걸까? 1장에서는 주로 모성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밝혔다. 남편 없이 임신했는데도 귀신이 그랬다고 한다. 열(烈) 이데올로기는 어디로 갔나? 2장은 열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기기묘묘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다면 남편의 어진 아내는? ‘아내’의 자리를 탐색하는 3장에서도 상식을 뒤엎는 여성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익숙한 캐릭터들일지도 모르겠다. 정처 자리를 꿰차는 후처들, 뿐만 아니라 영혜빙은 동성혼을 통해 知己의 사랑을 말하였다. 이처럼 ‘여성 욕망’이라는 렌즈를 통과하면서 이데올로기는 크게 굴절된다.
4장에서 우리는 ‘주체성’의 범례를 다루고자 한다. ‘여성주체성’은 근대 이후,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말이 아니다. 페미니즘과 거리가 먼 전근대에도 여성은 온갖 억압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기 삶을 개척해내는 굳건한 내면과 이를 표현해낼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질문한다. 오, 이런! 우리에게 그들의 소리를 들을 귀가 없었을 뿐이다. 그들은 ‘주체성’이라고 말하지 않고 ‘복’이나 ‘팔자’라고 했다.
여성 욕망은 현세에 그치지 않고 초월로 비상한다. 그녀의 분노는 죽음을 넘어서 신이 되는 데까지 뻗치고 있었다. 하룻밤 인연을 뒤로 한 채 도망가는 남자를 굳이 쫓아가다가 바다에 빠진 여자는 기어코 그 남자 가문의 신으로 좌정한다. 떠나간 남편을 원망하는 박제상 부인의 집요하고 독한 마음은 환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다가 마침내 돌이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녀가 열녀라고 칭송하기도 하고 신으로 섬기기도 한다. 이여순의 종교적 권력은 세속권력과 교묘하게 겹치고 있다. 이처럼 5장은 여성 욕망이 죽음 너머 종교와 제의의 영역까지 침범해가는 정황을 살폈다. ---「머리말: 마음을 포개다」중에서
옛 이야기들에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들이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적잖이 당황시킨다. 아니,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적은 게 아니라 ‘어머니’ 이야기 자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한석봉의 어머니 같은 이야기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왜 이야기 속 어머니들은 자식에 무심하고, 때로 자식의 비밀을 발설해 위기에 빠뜨리며, 심지어 이런저런 이유로 자식을 죽이는가. 이는 아이라는 존재의 위상이 현대와는 사뭇 달랐던 시대적 이유도 작용한 결과일 테지만 강력한 효열(孝烈) 이데올로기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었던 정체성은 어머니보다는 며느리, 아내였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고 강요하면서도 모성을 우선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전근대 사회체제에서 ‘어머니’의 실종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장. 모성(母性)으로부터의 탈주」중에서
사실 근대를 한참 지나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조차 너무나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열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이미 식상하거나 지루한 일로 치부된다. 게다가 열녀를 미화하면 남존여비의 부조리한 과거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자극하는 교묘한 꼼수로 배격되고, 열녀에 대한 폄하는 여성의 몰주체성을 일반화시킬 위험이 있어 불편하다. 성적 주체로서 여성의 자발적 선택과 행위들이 각광받고 소위 ‘나쁜 여자’가 ‘착한 여자’보다 매력적이라 통하는 이 시대에 열녀는 그 익숙함에 있어서는 진부한, 그러나 그 성격에 있어서는 오히려 낯선 이름일 것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남편의 죽음 이후 평생을 눈물로 수절하거나 혹은 자결한 열녀들, 즉 우리들의 문화적 기억 속에서 열녀라는 기표 아래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정절 이데올로기’라는, 여성의 온몸을 칭칭 감았던 강력한 힘과 관련해 열녀라는 이름 아래 수렴되지 않는 여성들을 불러오려 한다. 모래를 쥔 손에 힘을 주면 줄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이 늘듯이 강력하게 작동되는 이데올로기에도 부합하지 않는 사례들은 발생하기 마련 아니겠는가. ---「2장. 열(烈)로부터의 탈주」중에서
이 장에서 소개할 인물들은 현대까지 영향을 미친 조선시대의 문제적 아내들이다. 아내의 지위와 역할, 아내에게 기대하는 바가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처첩의 위계와 일부종사의 개념을 세운 초기,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들어가서 사는 친영제가 널리 확산되고 종법제와 가문의식이 신분 상승의 욕망과 맞물려 강화된 17세기 이후, 그리고 근대의 물결로 가부장 사회에서 억압받던 여성의 자의식이 도처에서 고개를 들던 말기에 각각 세간에 오르내리는 아내상 역시 크게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 변동의 시기에는 특히 아내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고민이 이야기 담론장을 통해 공유되면서 새로운 인물상이 유행처럼 등장하게 된다. 부부와 가족 개념이 재정립되는 오늘날, 옛 사람들이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고민한 아내상을 살펴본다. ---「3장. 양처(良妻)의 재구성」중에서
이 장에서 우리는 고구려의 우 태후, 조선후기 수급비, 구한말의 덴동어미, 그리고 구전설화 [내 복에 산다] 형의 주인공인 막내딸을 다루기로 한다. 주체성이 역사적 실천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며,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권력행사임을 의미한다면 우리 주인공들의 주체적 실천을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보다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4장. 그녀, 주체(主體)로 서다」중에서
여인은 자신의 목소리나 정념을 꾹꾹 누르고 가부장의 지배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였다. 세상의 폭력은 가려줄 사람이 없는 여인들에게 더없이 잔인했다. 그러므로 가부장을 잃은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로 여겨졌고, 대개 처절하게 밟히고 사라지며 한 마디 애도도 받지 못했다. 임을 만나면 나을까? 임이 있더라도 여인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다면 그에 의해 가슴에 한이 맺힌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처럼 여성의 한은 자연의 조화로운 기운을 거스르고 흐트러뜨린다. 한이 크면 클수록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므로 그녀들의 상처는 파괴와 죽음을 불러들인다. 그런 의미에서도 여인은 신을 닮았다.
---「5장. 죽음을 넘어, 초월(超越)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