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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2disc)
DVD

차이코프스키 (2disc)

이고르 타란킨 감독; 스모크투노프스키 출연; 안토니나 슈라노바 출연; | 열린문화원 | 2011년 10월 1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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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11년 10월 11일
시간/무게/크기 157분 | 크기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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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 줄거리 *
- 제18회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 줄거리 >

차이코프스키(1840. 5. 7- 1893. 11. 6)는 광산 감독관으로 일하던 아버지 일리야 페트로비치와 어머니 알렉산드라 안드레에브나 와의 사이에서 5남1녀중 둘째로 태어났다. 5세 때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했던 차이코프스키는 7세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한다. 8세 때 아버지를 따라 페테르스부르크로 이사를 가면서 기숙학교에서 정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49년 다시 아버지를 따라 페테르스부르크를 떠나게 되어 음악 교육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 이후 산발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전공은 법률 쪽이어서 법률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법무성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음악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된 계기는 그가 20세가 되던 해, 러시아 음악 협회가 개설한 음악 교실에 들어가게 되면서인데 나중에 페테르스부르크 음악원으로 발전하게 되는 이 음악교실은 당시 아무나 가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음악 이론을 배우기 시작한 차이코프스키는 이로부터 3년후 법무성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866년 페테르스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한 차이코프스키는 2년전에 세워진 모스크바의 음악교실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 그러면서 당시 수도였던 페테르스부르크를 떠나 시골 같은(?) 모스크바로 떠나게 된다.

그가 부임한 모스크바 음악 교실은 다시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개편되며 차이코프스키는 그곳에서 음악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28세가 되던 해 차이코프스키는 페테르스부르크를 방문하는 동안 그보다 연상이었던 33세의 벨기에 가수 데지레 아르토(Desiree Artot)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관계가 지속되면서 약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서 차이코프스키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약혼녀는 갑자기 마리아노 패딜라이 라모스(27)라는 스페인 가수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자연히 차이코프스키와의 약혼은 깨지게 된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으나 차이코프스키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치 못한 그를 보고 아마 약혼자는 실망하여 차이코프스키를 떠났지 않은가 판단이 된다. 그때만 해도 그는 이일로 인하여 그렇게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차이코프스키는 음악계에서도 어느덧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의 나이도 36세 이르게 되면서 그는 평생 동안 마음속에 항상 그리워하던 연인인 폰 메크(Nadedzhda von Meck) 부인을 알게 되고 그녀로부터 재정적인 지원 약속을 받게된다.(1876년)

그가 37세가 되던 1877년 그는 당시 음악원의 제자였던 안토니나 미류코바(Antonina Ivanovna Milyukova) 로부터 열렬한 구애를 받는다. 당시 28세였던 그녀는 내성적인 차이코프스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선 끝에 결국, 차이코프스키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1877. 7. 18)
그러나 그녀에게 별로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차이코프스키는 결혼 후 한달이 되자 이내 그녀와 파경에 빠지게 되면서 차이코프스키는 우울증 및 신경쇠약으로 인하여 강물에 뛰어드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몇 번의 화해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일로 인해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린 차이코프스키는 몇 달 후, 미류코바를 버리고 친구를 따라 스위스로 요양차 도망을 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후세의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 사실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하게 된다.
그 당시 종교적, 사회적 분위기로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이러한 문제로 그의 결혼 생활이 금세 파경에 이르지 않았겠느냐는 것이었고 결혼 바로 직전 차이코프스키가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완전한 사람으로서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 표현했다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몰라도 후세의 사람들이 해석을 이러한 방향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스위스로 요양 간 차이코프스키는 그곳에서 안정을 되찾고 다시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교향곡 제 4번을 비롯하여, 에프게니 오네긴 등 피아노 소나타와 많은 작곡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재정 지원을 약속한 폰 메크 부인과 많은 편지왕래를 한다. 처음에는 비교적 형식적인 인사 치례 또는 재정 지원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보내던 편지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는 것도 이때부터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제 4교향곡도 작곡한 후 이를 폰 메크 부인에게 헌정한다.
차이코프스키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의 첫머리의 변천사를 봐도 그의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녀에게 보낸 그의 첫 편지 첫 문장은 "Dear Sir" 였다. 말 그대로 존경(?) 친애(?)하는 귀하께.... 등의 지극히 형식적이었는데 이를 받아든 폰 메크 부인이 존칭의 사용을 생략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Dear Sir"에서 "Dear Nadezhda Filaretovna" 로, 이는 다시 "Beloved Nadezhda Filaretovna" 로, 그리고 또 다시 "His beloved friend" 로 바뀌어 간다.

이렇게 차이코프스키의 폰 메크 부인에 대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게 된다.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 부인과 주고받은 편지 중에는 1789년 3월 3일자로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 당신께 수도 없이 많은 여러 번의 편지를 써 왔지만 나는 당신에 대한 나의 진심을 표현 할 방법을 못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그러나 당신은 당신에 대한 저의 이 말 못하는 이러한 심정을 진정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

평소 차이코프스키의 내성적인 성격을 감안해 볼 때, 이 편지의 내용은 그나마 폰 메크 부인에 대한 그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몇몇의 편지 내용을 보면 은유와 직유법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차이코프스키가 마음속에 그리던 폰 메크 부인은....
원래 철도 가설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모스크바에 많은 부동산을 보유했던 백만장자의 남편을 둔 부인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44세이던 1876년에는 그녀의 남편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녀는 이미 11명의 자녀 이외에도 손자까지 보게 된 할머니(?) 였다고 한다.

남편이 죽게 되자 많은 부를 상속받게 되었는데 그녀는 가냘프고 키가 컸으며 매우 지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음악적 소양 또한 매우 깊고 넓어서 그녀의 집에는 당시 유명했던 루빈스타인은 물론 후에 이름을 떨치게 되는 드뷔시, 그리고 폴란드 음악가인 비엔냐스키 등이 음악 교사로서 그녀의 집에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접하게 되면서 부터는 그의 열렬한 지원자가 되어 매년 일정금액(년간 6,000 루블) 씩 그에게 지원을 해주기로 하였는데 이는 13년간이나 계속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돈은 약 3000불 정도가 되는 금액이었는데 차이코프스키에게는 큰돈이어서 대단한 힘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는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는 이에 힘입어 많은 곡들을 작곡한 후 그녀에게 헌정하기도 했지만 정작 그 둘이 만났던 것은 한 두 번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연한 기회에 스치고 지나가기만 했을 뿐이라고 ....
아마도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차이코프스키의 성격과 당시로서는 상당히 상류 계층에 머물러 있었을 만한 폰 메크 부인으로서도 편지처럼 보안이 되는 방법이외 직접적인 교류는 서로 간에도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차이코프스키가 우연한 기회에 그녀를 만나게 된 것도 폰 메크 부인이 그녀의 딸과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차이코프스키가 마차를 가로 막는 바람에 마차가 서게 되고, 서로가 눈이 마주치게 되었는데 상대방이 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차이코프스키가 보통 사람들과 같이 허리 굽혀 인사하자 이에 폰 메크 부인도 이렇다 할 이야기 없이 인사만 받고 지나가 버린 그야말로 밋밋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끝났다고 한다. 편지에서 그토록 은유와 직유법을 써서 사랑을 갈구하던 차이코프스키와 폰 메크 부인이었는데.....

13년째 계속되던 폰 메크 부인의 재정 지원은 1890년부터는 중단되었으나 이미 유명해져 버린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는 상태였었기 때문에 그의 생활에는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 왜 그동안 계속되어 오던 재정 지원을 중단하게 되었는지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으나 이미 정부로부터 받은 연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중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폰 메크 부인의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약간의 거리감(?) 등도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유명해져서 바빠진 차이코프스키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서신 왕래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의 음악세계는 이제 폰 메크라는 어느 일개 부인의 음악세계에 머물 수가 없고 전 세계를 상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인은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그의 음주습성 및 그로 인한 그의 건강도 걱정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항상 그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살아가는 슬픈 인생의 음악가이면서 생전에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하는 여인을 가져 보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라고....
그녀는 차이코프스키를 마지막으로 지켜보았던 그의 형(형인지 동생인지 ? ) 으로 부터 그가 사망한 이후 그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가 죽어 가면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세상을 저주했다고 하는 소식을....

음악에 있어서는 그토록 아름답고 멋진 세계를 구축해 놓고 간 차이코프스키였건만 정작 폰 메크 부인 말대로 그는 살아생전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단 몇일도 같이 지내보지 못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항상 고독과 우수가 쌓여 있는 걸까?
아니면... 그래도 그에게는 음악이 항상 사랑보다도 먼저였기 때문에 행복했었을까?.......

* 뒷 이야기

차이코프스키는 1893년 11월 6일 콜레라로 인해 갑작스런 사망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세월이 한참 흘러서 차이코프스키를 나름대로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주장되고 있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사망은 공식적으로 콜레라가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자살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그는 스텐볼크 툴몰이라고 하는 공작의 조카와 동성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이를 공작이 황제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법무부의 한 고위 인사였던 니콜라이 볼소비치 야코비 의 손에 이 사실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리이스 정교 및 사회적인 분위기에서는 동성연애가 신을 모독하는 커다란 죄악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면 그를 극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의 명예 등을 고려하여 그에게 극형보다 자살이라는 선택의 기회를 추천했다고 한다. 이를 차이코프스키가 받아들이고 결국은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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