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백 년 동안 『돈키호테』에 대해 이런저런 해설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디킨스, 멜빌,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엘리엇, 포크너, 만, 울프, 보르헤스, 마르케스, 쿤델라 등등의 이름을 들먹거릴 수 있다. 그러나 유명한 작가들이 『돈키호테』를 찬양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을 따라서는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겠다. 그 누구를 들먹이든 간에 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안 되지 않는가? 이 책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하는 ‘나의’ 『돈키호테』읽기이다. 즉 철저히 ‘돈키호테적인’ 『돈키호테』읽기이다. 요컨대 내 맘대로 읽는 『돈키호테』이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검토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검토’이고, 근본적인 시각은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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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공격하는 것처럼 기사소설 탐독으로 인한 소동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 아니 도리어 더욱 고귀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그야말로 기사도 그 자체의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기사소설로 인한 오해 소동과, 돈키호테 자신의 기사도 정신이 명백히 구별되어 있다. 기사소설을 풍자하고자 한 것이 세르반테스의 소설 집필 의도였다면, 이처럼 기존의 기사소설에 대해 그 내용의 황당무계함을 비판하는(돈키호테의 광기적 소동을 통해) 반면, 기사도의 바른 이상주의적 모습을 제시하는(돈키호테의 정상적 행동을 통해) 세르반테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는 것이야말로 그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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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에 나오는 기사를 모방하는 자에 불과하므로 언제나 기사처럼 말하고, 기사라는 것의 중요성과 그 미덕을 말해야 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은 사람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특히 그런 기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 무대에서 자신의 연기를 믿게 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말하자면 더욱더 미친 체 연기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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