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에서 배웠고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어느 날 우리는 시련을 겪고 어느 날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 어느 날 꽃들이 몸을 열고 어느 날 누군가 죽는다. 폭설이 내려 길을 지우기도 한다. 사랑 또한 그러하리라. 어느 날 갑자기 열병 앓는 사랑의 시기가 찾아와 눈멀고 귀먹게 한다. 이 맹목은 커다랗게 뭉쳐진 구름 덩어리 같아서, 먹장구름 다 내려놓아야 폭우가 멈추듯 사랑에 대한 집착 또한 풀린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참혹하다. 사랑이 위대하다는 진술은 <특히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집착>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참혹하다. 사랑이 그 참혹함의 감방에서 나오려면 관계의 그물망을 넓히는 수밖에 없다. 집착을 덜 할수록 이 그물망은 넓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넓은 그물망으로 멀리 던지기>를 해야 한다. 사랑의 종소리가 멀리멀리 펴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애정사전>은 그 단초다.
{전화} 그리움의 적, 그리움 차단기. ; 나는 너와 헤어져 휴대폰의 폴더를 열고 너를 호출한다. 너의 음성을 듣고 너의 안위를 확인한다. 너는 없으면서 있고 있으면서 없다. … 그리움은 쌓일 틈도 없이 휴대폰의 문자 속으로 즉각즉각 흩어진다. …
{연민} 사랑을 찾아가는 도정에 놓여 있는 신호등 ; 너의 머리 위에는 신호등이 걸려 있다. 기쁨과 슬픔으로 반짝이는 신호등. 희망과 절망으로 반짝이는 신호등. … 얼마나 많은 애정들이 이 과정에서 실패했던가. 단순하게 상대방을 끌어안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애정들이 좌초했던가. …
{수치심} 나 외에도 무수한 <나>가 있다는 것, ; 그 순간 나는 무너진다. 너의 눈빛 속에서 나는 찾을 수 없고, 나는 떨어져나간다. … 나는 극렬한 고통을 느낀다. 숨막히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토한다. …
{사랑} 현존하는 사람과의 삶, 혹은 살아감. 그곳에 부침 ; 너는 얼음 같은 존재다. 헌신적이기 이전에 냉정했고 둔감하기 이전에 이지적이었다. 그래도 너는 얼음 같은 존재다. 송곳이 박히는 순간처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
{추문} 주목받는 생일수록 추문에 휩쓸릴 가능성이 많으며 추문에 이르는 지름길은 출세.
{지식} 애정에 딴지 거는 파파라치.
{권위} {지식}과 한동네에 살고 있는 애정의 최대의 적.
{짝사랑} 콩 심은 데 콩 안 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유형의 애정 … 일부에서 선전하고 있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혹은 <칠전팔기>, 더 심하게는 <하면 된다> 따위의 치료제는 허위성 과장 광고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절대 믿어서는 안 됨.
사랑을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다니. 만고의 골칫덩이인 사랑을 이토록 자근자근 풀어헤친 글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호흡은 나직하면서 부드러운가 하면 때때로 격해서, 마치 물살을 차고 오르는 물고기를 보는 것 같다. 이 물고기의 사랑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징그러웠기에 저런 시선이 나올까. 사랑에 대한 통념이 무섭다는 것을 나는 그의 글을 보면서 알겠다. <애정사전>은 그 통념을 굴착해 들어간 지점에 놓여 있는 책이다. 그의 관념이 안팎으로 뒤집어 보인 사랑을 만나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 즐겁다. -은희경(소설가)
<애정사전>은 내용을 떠나 존재 자체만으로 빛나는 책이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낱말이 끈끈하게, 통렬하고 아뜩하게 "사랑"과 맞물려 있다는 깨달음을 안겨준다. 그러고 보니 누구나 자기만의 <애정사전>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사랑"을 "살아감"이라고 정의한다. 살아가는 것이 곧 사랑이다. 얼음에 "송곳이 박히는 순간처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방으로 금이 가면서 우리를 열어젖혔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금가게 해서 아프게 우리를 열어젖힌다. 이 책이 또한 그렇게 우리를 열어젖힌다. 그래서 날아가라고? 아니다. 추락하라고! 가속도로 추락하라고 한다.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초월할 때, 어느 순간 우리는 깃털처럼 가벼워진다(질 것이다). 그때 우리 가슴 속의 묵은 사전은 폐기되고, 새로운 <애정사전>이 편찬된다(될 것이다). 새로운 <사랑>, 새로운 <삶>이. -승영조(문학평론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