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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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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그 다음,

: 그러니까 괜찮아, 이건 네 인생이야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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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494g | 140*205*30mm
ISBN13 9788956058337
ISBN10 8956058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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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내가 가고 있는 길에 의문이 들었다. 의문을 품고 싶어졌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터 내가 이 길을 걷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나 는 누군가가 닦아놓은 길 위에 있었고,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게 무서웠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 길 끝에 너의 인생을 빛나게 해줄 엄청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말 그 무언가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줄까, 만약 그것으로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26

바나나 농장에서의 100일,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매일 컨테이너 한 쪽 벽에 붙여놓은 세계 지도를 쳐다보며 조금씩 꿈을 키워나갔다. 처음 세계 지도를 벽에 붙여놓을 때는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막막했지만, 큰 틀의 한 가지 조건을 정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바로 ‘세계 6대륙 전부 밟아보기.’ --- p.99

매일매일 녹초가 된 몸으로 퇴근하고 돌아오면 항상 뚫어지게 세계 지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륙마다 가고 싶은 나라들을 하나하나 체크해나갔다. 농장 수당이 들어오면 바로 인터넷이 되는 마을 도서관에 찾아가 비행기 표를 하나씩 구입했고, 그때마다 공항과 공항 사이를 빨간색 펜으로 쭉 그었다. 비행기 표를 고를 때는 딱히 기준이 없었다. 무작정 가장 싸고 할인을 많이 해주는 표를 골랐다. 일행도, 일정도 없다 보니 가장 싼 비행기 표만 골라서 계획을 짜도 전혀 문제될 일이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비행기 표가 20장을 넘어섰을 때, 빨간 색 선은 이미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서울을 가리키고 있었다. --- p.100

참 아이러니하다. 농장에 온 이후로 매일 힘든 노동을 하고 있었고, 매트리스 하나 달랑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으며, 지겹도록 같은 음식만 먹고 지냈다. 하지만 분명히 호주 시골 농장에 살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매일 밤 곰팡이 가득한 매트리스에 누워 농장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농장에 오기까지 많은 반대와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성공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 p.117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이제껏 남들이 비웃을까 두려워 갖지 못했던 새로운 꿈을 꾸고 싶어졌다. 내가 늘 꿈이라고 외쳤던 것들은, 사실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꿈은 내가 아닌 것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세렝게티의 밤, 지구상 가장 고요한 곳. 그곳엔 오직 바람과 짐승 소리, 투박한 나의 숨소리만이 있었다. 온몸에서 내 것이 아닌 기운들이 하나씩 씻겨나갔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드디어 나 의 진짜 영혼이 미세하게나마 숨 쉬기 시작했다. --- p.203

천국의 바다에 서서히 노을이 내려앉았다. 오색찬란한 바다는 순식간에 황금빛 불길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영롱한 장면은 들고 있던 카메라마저 손에서 내려놓게 만들었다. 사진으로 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아름다움이었다. 최고의 아름다움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큼 삶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장면이 또 있을까. 큰일이다. 꼭 다시 와야 할 곳이 점점 많아져서. --- p.235

엄마는 1년간 여행을 하고 돌아오겠다는 내 결정에 반대하셨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내가 안정되고 평범한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셨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이러한 자신들의 성격을 닮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반대하는 엄마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내가 아니라 내 나이의 엄마였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엄마는 솔직하셨다. “…나라면 떠날 것 같아.” --- p.252

처음 여행을 떠날 때 가졌던 의문. ‘인생이란 무엇일까?’ 아직 정확한 답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다만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인생은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 삶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삶에 조금씩이나마 아름다운 것들이 채워진다면, 언젠가는 ‘인생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하고 웃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1년간의 긴 여행을 여기서 마쳤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것도 아주 충분히. 그러니 이제 돌아가도 아쉽지 않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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