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경남거창에서 태어났다. 1987년 무크지 〈전망〉 5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현재 밀양문학회, 경남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밀양 세종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집으로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천천히 오는 기다림』『따뜻한 곳』『투명한 얼음장』 등을 펴냈다.
일요일 나무 심는 날 아침, 전봇대 맨 위 전깃줄에서 목청 좋게 노래하던 새. 내 발자국 낌새 알고 옆집 전봇대로 휘익 날아간다. 아침마다 찾아와 노래를 불러대는 저 손님은 누굴까? 이튿날 아침에도 살포시 문 열고 노래를 엿듣는데 어찌 알고는 도망간다. 대체 누굴까? 며칠 인터넷을 뒤진다. 한국의 새. 멀리서 봐 놓으니 생긴 건 분명치 않아. 새소리 텃새 소리 듣다듣다 비슷한 걸 찾아내었다. 휘-익, 휘파람새. 아내한테 자랑을 했더니, 미숙이가 휘파람새라 그러대요. 나무 심는 날 다녀간 후배다. 어떻게 알았대? 그냥 들어보니 휘파람을 불더래요.
--- p.48
꺾여서 시작한다는 말
꺾어다 꽂아 놓기만 해도 산다는 동네 사람들 말을 믿고 울타리가 될 자리에다 사철나무를 꺾어다 심었다.
날마다 물 주고 틈새는 밟아주고 내 딴에 정성을 쏟았는데 잎이 시들시들하더니 꼭지서부터 줄기까지 마르고 끝내 잎은 노랗게 떨어졌다.
꺾꽂이 때를 놓쳤나 동네사람들 말을 너무 쉽게 믿었나. 할 수 없지 뭐, 포기하고 보름도 더 지나 한 달이 되어 가는데 다 죽어가던 줄기에서 철 늦은 새 잎이 코딱지만하게 눈을 내밀고 있다.
꽂아만 놓으면 산다는 게 모가지 꺾여서 죽음 목전까지 갔다가 생의 밑바닥부터 쳐올리는 것임을 나는 통 모르고 있었다.
--- p.36
깡통에 담긴 우주
사내가 껴안은 깡통에 어스름만 꼬깃꼬깃 쌓이는 지하도 입구. 먼 길 나서는 보름달이 주머니 탈탈 털어 은전 한 닢 던져넣자 우주의 귀퉁이가 이내 환해진다.
--- p.41
학교를 떠메고
아침부터 웬 학교가 흔들대는가 했는데 위층 음악실에서 처녀 선생님이 아이들과 노래를 불러제끼는 거였다. 그냥 노래만 부르지 학교를 떠메고 가는 거였다.
--- p.72
갠 날
아빠, 이상해요 학교 가는데 신발도 가방도 가벼워요 집 앞에서 동무 만나 재잘대며 가는데요 앞에서 꽁지머리 셋이 촐랑대고 동생과 오빠가 꼭 쥔 손도 마구 흔들려요 문구점 지날 때 형님들 둘이 탄 자전거 삐옹 삐옹 지나가고요 교문 앞 은행나무 손 흔들어 반가워하고요 참새들도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박자 맞추어 뛰어요 아빠, 오늘은 무슨 날인데 다들 저렇게 촐랑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