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쪽 다 초조한 마음을 내심에 깊게 감춘 채 한 대의 승용차와 택시는 적정 거리를 두고 맹렬한 속도로 모슬포 입구로 다가섰다. 파커 팀장은 모슬포가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안도감이 들었다. 물론 뒤에서 추격하는 택시가 신경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접근하면 바로 벌집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스티븐, 이제 종착역에 다 와 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라.” “염려 마십시오. 장사 한두 번 합니까?” 스티븐 요원도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바로 대답했다. 숨 가쁜 시간이 그를 연속적으로 몰아넣었다. 불과 30여 분의 시간이 그가 살아온 전 생애와 맞먹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이제 그 숨 가쁜 순간이 끝난다는 생각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절실히 그리워졌다. 맥주가 그리워지자 상처 부위에서 스멀거리며 기어 올라오는 통증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파커 팀장은 이미 벌어진 일에 더 이상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차후 이 일의 수습에 대해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트렁크에 있는 승필이가 유일한 면책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물론 확신이 안 서는 게 흠이라면 결정적인 흠이었지만 그 우려가 가슴을 무겁게 내려앉게 했다. 서울에서 보안사령부 요원에게 물먹은 후유증으로 너무 일을 크게 벌였다는 건 알았지만 그는 조국 아메리카를 믿었다. 이 정도로 노란원숭이에게 주눅이 들 조국이 아니었다. 그 방대한 정보망과 세계 최강의 국력을 가진 자랑스러운 자신의 조국이었다. 소련이 아니라면 어디에서라도 절대 밀리지 않을 미국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질 무렵 그의 가슴을 무너지게 하는 일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제길! 또 검문이냐?” 파커 팀장의 신경질에 유심히 바라보던 스티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팀장님, 일반 검문이 아닙니다. 군이 나섰습니다. 군용 트럭이 뒤쪽으로 보이고 수많은 군 병력들이 보입니다.” “뭐라고! 설마?” 놀라 자세히 바라보던 파커 팀장의 얼굴이 금방 스티븐 요원의 얼굴을 닮아 갔다. “어쩌죠? 검문을 강행 돌파하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스티븐 요원의 말이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이런 제길! 그렇다고 순순히 검문에 응하면 우리가 사살한 경찰 문제가 얽힐 거다.” 머리가 띵해지는 파커 팀장이었다. 총격전만 없었더라도 이 검문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약이 바짝 올랐다. “빌어먹을! 영어 못 하는 경찰 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그러게요. 그나저나 어쩌죠?” 우려가 잔뜩 서린 스티븐 요원의 말에 파커 팀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스티븐, 정면 돌파는 무리다. 산으로 해서 모슬포로 간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놈들은 군인입니다. 그리고 모슬포라면 해병대가 분명합니다. 아무래도 어렵지요.” “그래, 일단 여기서 차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상황을 보며 모슬포 미군 기지로 귀환한다. 그전에 증거는 인멸해야 한다.” “트렁크에 있는 놈 말입니까?” 눈치 빠르게 대답하는 스티븐을 보며 파커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아무리 봐도 살려 둬선 안 될 놈 같아. 제거하면 왠지 노란원숭이들이 큰 타격을 받을 거 같은 느낌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해치우죠.” “그래, 차를 멈추면 바로 트렁크를 열어 머리통에 한 방 놔 줘.” 말을 마친 파커 팀장은 이미 2백여 미터 내로 접근한 검문소를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