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빌 게이츠는 약간 의아한 듯이 물었다. “우리는 빌 게이츠 씨의 천재성을 믿습니다. 분명히 조만간에 무언가 독보적인 일을 하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결과를 본 것은 없습니다.” “항상 투자는 불확실하죠. 하지만 성공했을 때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결국 투자란 무 아니면 유 아니겠습니까?” 단호한 소견을 밝히는 유준상이었다. 빌 게이츠는 그의 논리에 점점 매료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 사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나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를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아직까지 별로 없었다. 그런데 피부색이 다른 두 명의 동양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왜 직접 투자는 안 하십니까?” “저희가 직접 투자한다면 아무래도 미국의 정서상 약간의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극비리에 자금을 투자하려고 합니다.” 빌 게이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미국의 상류 사회를 구성하는 자들은 앵글로색슨족이 아니라면 일단 소외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 또한 그 핏줄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크나큰 어려움은 없었다. 빌 게이츠는 점점 더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넌지시 상대의 의중을 떠봤다. “투자는 어느 정도 하실 생각입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이미 대한민국의 현대그룹과 연구 개발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모르는 사실인데요.” 빌 게이츠가 그 사실까지 알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을 꺼내 둬야 다음 말을 꺼내기가 편하다는 것을 아는 유준상이었다. “이번에 저희가 빌 게이츠 씨에 대한 이야기를 현대그룹에 했습니다. 현대그룹에서도 적극 연구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현대그룹이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죠?” “대한민국 재계 순위 1, 2위를 다투는 재벌 기업입니다.” “아, 그래요?” 빌 게이츠의 눈이 반짝거렸다. 막 경제 개발을 하려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선 그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미국 명문대인 하버드 출신인 그였다. 대한민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기업이라면 상당한 자금 투자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빌 게이츠 씨가 원하시는 만큼 투자하겠습니다. 그것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님의 의지입니다.” “그런 좋은 조건이라면 분명히 반대급부를 바라실 텐데요.” “저희는 빌 게이츠 씨가 하시는 사업의 전략적 제휴와 지분의 30퍼센트를 바랍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모든 권한을 주시길 바랍니다.” “30퍼센트요?” 빌 게이츠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30퍼센트라면 전체 지분 중에 3분의 1이 채 안 되는 양이었다. 투자라는 건 막대한 지분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예상을 깨고 의외로 크나큰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대그룹이었다. 빌 게이츠는 사실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 산업은 정보 사회이고 그 정보 사회에서 컴퓨터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거라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다. 빌 게이츠는 그들도 자신과 같이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현대그룹의 통 큰 배짱에 점점 매료되어 갔다. 사실 그가 생각해도 현대그룹의 요구는 별것이 아니었다. 작은 이익 정도야 눈감아 줄 수 있었다. 조건이 크지 않자 바로 입질을 시작하는 빌 게이츠였다. “그럼 일단 얼마를 투자하실 겁니까?” “글쎄요. 빌 게이츠 씨께서 얼마를 원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현대그룹에서는 1천만 달러를 투자할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이 처음이자 끝은 아닙니다. 조금 더 필요하다면 계속 투자할 생각입니다.” “헉! 1천만 달러!” 빌 게이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1천만 달러는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실로 엄청난 자금이었다. 막말로 웬만한 큰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거액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