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청와대다!” 드디어 시위대의 전열이 청와대 입구 쪽으로 다가섰다. 막상 청와대 정문이 보이자 시위대는 순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그야말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무서운 땅이었다. 아무리 종교로 무장한 시위대라고 하나 청와대 문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선두가 멈춰 선 지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사라지고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시위대 가슴속에서는 알지 못할 불안감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었다. 저기 보이는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짐작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개혁 정부가 시위대에게 관대한 입장을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여기서는 몰랐다. 정권의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는 순간에 어떠한 일을 벌일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권력을 가진 자가 독한 마음을 품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수없이 보았던 한국 국민들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게.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용기백배하여 달려왔던 모든 시위대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안쪽에서 시위대를 바라보는 303경비단 병사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제발 이 선을 넘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가득했다. “근데, 왜 정문을 열어 놓은 겁니까?” “모르지, 각하가 직접 지시한 거니까.” 부관과 얘기를 나누는 백표 대령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정문이라도 닫아놨으면 시위대가 들어오는 데는 상당한 제약이 따랐다. 강철로 제작된 정문은 쉽게 망가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를 들어오고 싶은 시위대라면 마땅히 담을 넘어 들어와야 되는 상황이었다. 담을 넘어 들어오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담도 높았을 뿐더러 그 앞에서 막아선다면 누구도 청와대로 침입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정문을 활짝 열어 놓으라는 지시를 내린 최규하 대통령을 사실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은 군인이었다. 그저 명령에 복종할 뿐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또한 당장은 저들을 막아 내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다른 사정 따위는 돌아볼 겨를조차도 없었다. 시위대의 소식은 후미에 있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들어갔다. 지도자들도 순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가 어디인가. 그들의 마음속에도 두려움이 새록새록 솟아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죠?” “일단 막아야 하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간다는 건 허무한 거 아닙니까? 일단 들어가지 말고 정문 앞에서 시위하는 방향으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맞는데…….” “혹시나 군중심리에 휩쓸려 들어가게 되면 수습 불가일 텐데요.” “음…….” 기독교 지도자들도 이제는 차라리 난처한 입장이었다. 차라리 세종로에서 막아섰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악을 쓰며 최규하 정권에 대한 비난만 퍼부었으면 그만이었다. 하루 이틀하다 보면 개혁 정부의 입장이 갈수록 난처해지는 것은 분명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세종로를 시원하게 터주는 통에 난처한 입장에 빠진 것이다. “우리가 한방 먹은 기분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선두에 연락해서 청와대 문을 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기독교 지도자들의 결정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청와대 문을 넘지 않고 앞에서 계속 시위를 하면서 압박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곧장 앞으로 나간 지휘부의 입장은 바로 맨 앞에 있는 선두에 전달되었다. 선두는 일제히 자리에 앉아 연좌시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