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가끔 지루해질 때가 있다. 고등 학교 때의 학급 활동 시간에 고지식한 학급 위원인 여자 아이에게 '무라카미씨의 사고 방식은 좀 이상해요.'라고 추궁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원래 천성이 그런걸. 그렇게 말하는 너도 얼굴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라고 정색을 하며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그런 말을 실지로 하지는 않지만.
--- p.158
프린스턴의 거리는 흔히 말하는 '평화로운 교외'로서, 범죄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 곳이다. 얼마 전 우리 집에 대학 당국으로부터 '잠깐이라도 집을 비울 때는 열쇠로 잠그도록 하십시오. 최근에 빈집털이가 늘고 있습니다'라고 씌어진 통지가 날아들었는데, 그건 거꾸로 말하면 이제까지는 별로 신경쓰며 잠그고 다니지 않아도 괜찮았다는 뜻이 된다.
--- p.91
이 수필집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감상적'인 혹은 '환상적'인 하루키가 아니라 이지적이고 성찰적인 하루키이기 때문이다. 그는 낯선 이국 땅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주위 풍물을 관찰하고, 거기서 어떤 통찰 내지 지혜를 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루키의 관점은 다른 일반적인 미국 견문록(체험기)과는 다른 매우 흥미로운 요소를 내장하고 있다. 그것은 하루키 자신 그 누구보다도 미국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은 '미국 취향적' 작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삼 젊은 시절 하루키가 미국 문화에 얼마나 경도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인터뷰에서 종종 고백했듯이 일본의 사소설보다 미국의 현대 작가들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의 작품에 헐리우드 영화나 록 음악, 재즈 등에 대한 남다른 애호가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슬픈 외국어>는 이처럼 미국 문화의 다시 없는 수혜자인 그가 미국에 도착해서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쓴 기록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은 책이다.
그는 한때 자동차 판매를 둘러싸고 일어난 미일 양국인 간의 감정적 대립을 고찰하기도 하고, 육상 경주를 예로 들어 일본 사회의 관료적 분위기와 엘리트 의식의 허위성을 공박하기도 한다. 또 그가 머물던 프린스턴 대학촌의 분위기를 스케치하며 지식인의 속물 근성을 꼬집기도 한다. 미국 사회의 보수화와 여성의 지위 향상, 중산층의 불안 심리를 설득력 있게 진단하기도 한다.
--- 추천의 말(남진우 : 문학평론가)
'아무튼 실제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지. 만일 마음속으로부터 절실하게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지금은 잘 쓸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시기는 반드시 온다고 생각해. 그때까지는 현실의 경험을 벽돌을 쌓아 올리듯 하나하나 소중하게 쌓아 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 p.213
스물아홉 살 때,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봄날 오후, 진구 야구장에 야쿠르트 대 히로시마 팀의 대항전을 보러 갔었다. 외야석에 눕다시피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힐튼이 2루타를 쳤고, 그때 갑자기 '맞아, 소설을 쓰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고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대체로 학생들은 모두 멍한 표정을 짓고 이렇게 묻는다.
'저...... 그럼 그 야구 시합에 뭔가 특별한 요소가 있었던 건가요?'
나는 학생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게 아니라 그것은 계기에 불과했지. 태양의 빛이라든지 맥주 맛, 2루타 공이 날아가는 모양, 그런 여러 가지 요소가 딱 맞아 떨어져 내 안에 있는 뭔가를 자극했겠지. 말하자면 내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라는 실체를 확립하기 위한 시간과 경험이었던 거야. 그것은 뭐 특별하고 유별난 경험일 필요는 없어. 그저 아주 평범한 경험이어도 상관없지. 그 대신 자기 몸에 충분히 배어 드는 경험이어야만 해. 나는 학생 때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던 거야.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나에게는 7년이라는 세월과 고된 일이 필요했던 거겠지. 아마도.'
--- pp.209-210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비결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1)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먼저 자신이 확실하게 파악할 것. 그리고 그 요점을 되도록 빠른 기회에 우선 짧은 말로 명확하게 할 것.
(2) 자기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쉬운 단어로 이야기할 것. 어려운 말, 멋들어진 말, 상대의 마음을 끌려고 하는 말은 필요하지 않다.
(3) 중요한 부분은 되도록 한번 말하고 또 바꿔 말할 것. 천천히 말할 것. 가능하면 간단하게 비유를 하며 말한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점에 유의하면, 그다지 유창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 주의 사항은 그대로 '문장 쓰는 법'이기도 한데 어떨까. (p. 171)
--- p.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건 자기 소개 대신, 1차 시험 점수 얘기를 꺼내는 사람의 심리 상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사람들이 일본에서 엘리트 관료로서 세력을 떨치며 잘난 척하는 걸 생각하니(미국까지 와서도 꽤 잘난 척하고 있다), 그건 좀 곤란한 일이구나 싶었다.
--- p.240
그래도 나는 앞으로 다시 일본에 자리를 잡으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까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자원 봉사나 사회 활동같은 걸 하면 대단하고, 안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자기의 의문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압축시킬 수 있는지가 될 것이다.
미국에 와서 많은 사람(특히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런 일에 대해서 꽤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세대 따위는 상관없다, 개인이 전부다'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그 주관을 지켜 왔지만, 우리 세대에는 역시 우리 세대 나름의 독자적인 특징과 경험이 있으니까, 그런 측면을 재검토하고 나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고려해 봐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든다.
--- pp. 69-70
1992년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4월 20일 '애국 기념일'에 치러졌다. 내가 이 유명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서 뛴 것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봄에는 보스턴 가을에는 뉴욕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일 중의 하나(또는둘)이다. 일본에서도 종종 텔레비젼으로 중계되는 대회인 만큼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뉴욕 마라톤 대회는 반환점이 있는 일반적인 왕복 코스 가 아니라, 보스턴 대회는 뉴욕 마라톤 대회와 마찬가지로, 한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향하는 편도 코스다.
---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