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장수들이 조선 국왕 몰래 몽골군과 화기를 밀거래했으니 그 책임을 지라는 터무니없는 말에 중종과 대신들은 자신들이 칙서를 받는 도중이라는 것도 잊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아니, 오랑캐들과의 화포 밀거래라니요? 저희 조선이 어찌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수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칙사께서는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옵소서.” 중종에게 점수를 딸 기회라고 생각한 윤원로는 급히 사신으로 파견된 한림원 시독 화찰에게 청원했다. 하지만 그의 섣부른 행동은 중종과 대신들의 기선을 제압할 생각에 가득 찼던 화찰에게 좋은 핑계거리를 던져 준 셈이 되었다. “하급 무관 주제에 어딜 주제넘게 나서느냐! 화포 포신에 천자라는 글자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는데, 하늘을 속이려 하다니! 조선은 감히 황제 폐하를 우롱하려고 드는 것이냐?” 통역을 통해 윤원로가 한 말을 들은 화찰은 잡아먹을 듯이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윤원로는 쩔쩔매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이……. 가만!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분명 천자라고 하셨습니까?” “어허! 도통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중간에 정신이 번쩍 든 윤원로가 급히 묻자 화찰은 그에게 짜증스러운 눈빛을 던지며 재차 소리쳤다. 그러자 찔끔한 윤원로는 급히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윤원로를 대신해 사신 화찰에게 밉보이기 싫었던 대신들은 그의 간절한 시선을 외면했다. 심지어 대윤 세력들은 순간적으로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결국 형의 위기를 보다 못한 윤원형은 형을 살리기 위해 상석에 앉은 화찰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의 무례에 사과를 드립니다. 먼 조선까지 오시느라 많이 피곤하실 텐데 칙사께서는 연회에 참석하시어 연회를 즐기시지요.” “엇험! 그리 하겠소이다.” 윤원형이 고개를 조아리며 간청하자 화찰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헛기침을 하면서 윤원형의 안내를 받으며 경회루로 향했다. 그러자 대신들은 일제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명의 사신이 불러들인 폭풍은 아직 남아 있었다. “북방의 장수들이 오랑캐들에게 화포를 팔았다니.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오?” 화찰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중종은 대신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정보가 부족했던 대신들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신도 명이 왜 저런 억지를 부리는지 도통 영문을 모르겠사옵니다.” ‘원명(原明, 유인숙의 자), 이 망할 인간 같으니. 대체 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려 줬어야 할 것 아니야!’ 대신들은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속으로 대윤의 일원이자, 명에 사신으로 파견된 유인숙을 욕했다. 그런데 사실 유인숙은 명에서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알려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명이 감시를 철저히 하는 바람에 사신들이 조선에 간다는 것만 간신히 알릴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송구스럽단 소린 집어 치우고 명의 사신이 왜 저런 억지를 부리는지 그 이유부터 알아보시오! 만약 명의 사신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선은 대노한 명의 대군의 발밑에 종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