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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1 -2
중고도서

플래시. 1 -2

우영주 | 가하 | 2011년 05월 0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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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5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406g | 128*188*30mm
ISBN13 9788997059140
ISBN10 8997059149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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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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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도착한 건 새벽 6시가 조금 못 되어서였다.
하늘도 바다도, 먹색을 닮은 짙은 남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2월 말,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새벽바다의 공기는 매섭고 차가웠다. 하지만 코끝이 얼얼한 가운데서도 오히려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차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내내 그랬듯,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묵묵히 각자의 카메라를 꺼내 렌즈를 끼우고 촬영 준비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경이 실토하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서경이었다. 건우는 그런 서경을 말없이 돌아보기만 했다. 차마 건우의 얼굴을 보고 말하기가 어려워 서경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지금 당장은 돈을 갚기가 힘이 들 것 같아요.”

고개를 들지 않아도 건우의 눈길이 느껴졌다. 찬바람 속에 있어도 뺨이 달아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동이 트지 않은 덕에 얼굴이 붉어진 게 잘 보이지 않을 거란 거였다. 서경은 작은 한숨을 삼키고 다시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모두 갚아드리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좀…… 많이 부족해요. 하지만 돈이 생기는 대로 바로 갚을게요.”

서경이 조금 긴장된 얼굴로 건우를 보며 말을 맺었다. 건우의 표정은 늘 그렇듯 담담하기만 했다.

“편할 대로 해요.”

건우의 대답이었다. 그러고는 별 대수롭지 않게 말을 덧붙였다.

“가진 게 돈뿐인 놈인데 뭐.”

건우를 말끄러미 바라보다 서경이 작게 웃었다. 건우도 서경을 보며 픽, 가볍게 웃었다. 그 덕에 내내 살얼음이 낀 듯 조심스럽던 분위기가 걷혔다.

“고마워요.”

서경의 말투도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건우는 씩 웃으며 고개만 짧게 끄덕였다. 카메라를 들고 조리개를 조절하던 서경은 건우를 힐끔 보았다. 궁금했다. 그래서인지 충동적으로 물어보고 말았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순간, 멈칫하는 것 같았지만 금세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글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건우가 무심한 듯 되물었다.

“내가, 잘해주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무한테나 이렇게 대해주는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스스로에게 당황스러워졌다.

“미안해요. 괜한 말을 했나 봐요.”

서경은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카메라를 맞췄다. 건우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묘했다.

“해가 올라오네.”

건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에 서경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동이 트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 붉은 기운이 돌고 가느다란 선이 그어졌다. 서경은 카메라를 들었다. 뷰파인더를 가득 채운 색 고운 햇살은 바다를 힘차게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냥, 윤서경이 힘든 게 싫어.”

문득 건우가 한숨 쉬듯 한 말이었다.
바다를 향하던 서경의 고개가 천천히 건우를 향했다. 카메라를 쥔 손이 저절로 내려갔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서경이 자신을 보고 있는 줄 안다는 듯,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며 건우는 중얼거렸다.

“그냥, 그뿐이니까.”

카메라를 들고 조리개를 조절하던 건우가 말을 마치고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서경을 바라보았다.
가까운 거리였다. 손을 뻗으면 금세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
찰칵.
건우는 카메라를 들어 태양이 아닌 무방비한 상태의 서경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듯 그는 카메라를 보았다.

“사진 찍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는 풍경이 있어. 그럴 땐 반사적으로 셔터를 누르게 되거든.”

말을 멈추고 그는 고개를 들어 다시 서경을 보았다. 매서운 바닷바람에 새파랗게 얼어 있던 그의 입매가 문득 부드럽게 허물어졌다. 피식, 웃는 모습이 조금은 씁쓸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해 보였다. 서경과 시선을 마주하고서 그가 결국 고백하듯 말했다.

“윤서경, 네가 나한텐 그래.”

그냥 왜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말을 하는 건우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다정해서였을까. 아니면 새벽 바다에서 보는 일출이 너무 아름다워서였을까. 저도 모르게 서경은 울컥, 눈물이 났다. 코끝이 싸해지며 눈가가 뜨끈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뺨이 축축해졌다. 건우가 바보같이 왜 우냐며, 너 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보기 싫다고,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그 뒤에 있었던 일들은 정확하게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건우가 한 발짝 다가섰고 그가 손을 내밀어 눈가를 닦아줬던 것도 같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는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궼경의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서경은 눈을 감았다.
그의 숨소리가 느껴졌고…… 그리고 그의 입술이 와 닿았다. 아주 많이 따뜻했고, 그리고 아주 많이 다정했다.

파도 소리가 오랫동안 들렸던 것도 같다.

온통 짧게 조각난 기억들뿐이었지만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의 편린들이기도 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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